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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Oct 30. 2020

주저 없이 떠나는 너를 위해

프롤로그

네가 말했다.

"언니, 나 유학 가요"


그렇게 말하는 너의 표정이 어땠더라. 설렘을 감출 수 없어 눈이 반짝였던가, 아니면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이젠 그만하고 싶어요, 하는 지친 눈빛이었던가. 너의 표정이 어떠했든 아마도 나는 그렇게 말했을 거다.


"축하해!"


너의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마침내 내린 결정을 축하하기도 하지만, 내가 이 말을 하는 진짜 속내는 하나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곳으로 발을 내딛겠다고 결정한 걸 축하한다고. 그게 설사 남에게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내리게 된 결정이라 하더라도 모든 모험의 시작은 축복받아야 마땅하니까.


내 시작은 어땠더라. 조촐했었다. 나는 떠나고 싶어 안달 났던 사람이었고, 내 주위에는 유학은커녕 그 흔한 외국 여행 다녀온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몇 다리를 건너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러 다녔다. 요즘에야 인터넷에 넘쳐나는 게 조언이라지만, 난 좀 촌스런 사람이니 그 사람 눈을 마주 보고 직접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 이면에 담긴 진짜 경험을 알고 싶어서. "어, 거기 좋지"하고 말하면서 그 말 뒤에 스쳐가는 또 다른 감정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어차피 나도 겪을 일들이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미래를 대비해보고자 하는 사소한 발악이었달까.


그렇게 한국을 떠나 내 생애 최초의 외국인 영국에 발을 디딘 뒤, 어떤 말들은 귀에 남았고, 어떤 말들은 남았지만 '난 다를 거야'하며 무시했고, 어떤 말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네가 처음으로 내게 떠난다는 말을 했을 때, 축하한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을 별로 하지 않았다. 너는 떠남을 준비하기 위해 바빴고, 그런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그때의 너에게는 더 도움이 될 테니.


그렇다고 해도 십몇 년의 시간을 영국에서 보내온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영국이 아닌 곳들을 여행했고, 유학을 마치고 석박사 학위를 땄고, 취업했고, 직장을 4번이나 바꿨으며, 한국인이 아닌 남자들과 연애를 했고, 그중 한 남자와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이젠 정원이 딸린 집과 자동차 두 대를 소유한 흔해 보이는 영국 중산층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기로 결정한 너를 보고, 그때 나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았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네가 날다가 지칠 때, 이게 맞는 건지 헷갈릴 때, 혹은 그냥 '언니는 어땠어?'하고 묻고 싶어 질 때 곁에 있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너에게 미리 보내는 편지 같은 거랄까. 자세히 읽을 필요도, 굳이 처음부터 읽으려 할 필요도 없다. 잠깐 읽고 네 머릿속에서 지운다 해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러다 한 번이라도 네게 도움이 되거나 커피나 차 한잔의 여유 같은 걸 네게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결국 네 앞에 놓인 건 네 삶이며 그러니 후회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선택지를 선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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