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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21. 2020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둘째 아이를 낳고 서울역에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4살이 된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는 2살 둘째를 안고 지하철을 타고 나선,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러 역사 내에 있는 커피숍을 찾아 들어가려 했다. 그저 각자의 행선지를 갈 뿐인 사람들도, 기억보다 많이 달라진 서울역도 내게는 엄청나게 낯선 것이 되어 나는 아이를 안은 채로 무척이나 두리번거렸다.
 
사람들로 바글대는 그곳에서 나는 생경한 정적을 꽤 여러 번 느꼈고 그럴 때마다 덜컥 덜컥 겁이 났다. 누군가가 나와 내 아이를 해치면 어쩌나, 서울역에 폭탄 테러라도 벌어지면 어쩌나, 이상하게도 벌어질 리 없는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곳에서 머무는 내내 불안함에 두려워했다.
 
첫 아이를 낳고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물론 나와 아이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 날의 외출이 끝난 후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이야기했을 때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냥 웃어버렸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누구에게라도 이해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렇게 옅어져 버렸다.


내 몸만 지키면 됐던 내가 엄마가 되고서 품에 안은 아이를 먼저 지켜야 했다. 나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이 생기니 온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버렸다. 한 번은 첫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다가 삐끗했는데 아이를 놓치지 않고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더니 며칠간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심한 몸살이 왔다. 그런 시간을 한참이나 보내고 나서야 아이를 안는 것도, 엄마가 되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익숙해지기 시작한 엄마 노릇을 하며 둘째, 셋째를 거듭 낳을수록 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마음에 헷갈리게 될 때가 많다. 두 손에 다 잡히지 않는 아이들을 지키기에는 벅차고 힘겨워 숨을 헉헉대다가도  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다고 눈에 독을 품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을 잃게 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애간장이 끓고 겁이나 몸서리를 치게 된다.


오락가락, 알 수가 없어지는 심사에 어느 날은 세상에 없는 겁쟁이가 되기도, 또 어느 날은 담대하기 그지없는 용맹한 장수가 되기도 한다.


친한 동생이 얼마 전 둘째를 낳았다.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동생이 첫째 아이를 건사하며 뒤뚱거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얼마 후 출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얼른, 내가 둘째를 낳고 키울 때 느꼈던, 사방이 꽉 막힌 듯한 고립감에 숨이 턱까지 차듯 고됐던 나날들이 떠오르면서 동생이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때의 나보다 훨씬 야무지고 현명한 동생은 두 아이를 돌보며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하고 자신의 일까지 척척 잘 해내며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동생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동생이라고 그게 쉬웠을 리 없다. 자꾸만 차오르는 우울감을 떨쳐내려 지친 몸을 더 바삐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언니라고 해봐야 해 줄 수 있는 것이 몸 아끼면서 무리하지 말라는 말밖에 없어 동생에게 미안하기만 했던 어느 밤, 푸르렀던 20대를 함께 보내고 이제 엄마로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애가 느니 안 하던 생각이 막 드네.”

“겁이 막 나면서도 무서울 게 없어져.”

“이 아이들을 언제 키워서 사람들 만들고 눈을 감을까.”

“내일이 안 오면 어쩌지, 저 예쁜 것들을 영영 볼 수 없으면 어쩌지.”




우스갯소리를 하며 웃다가도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주책맞게도 금세 목이 메어서 눈앞이 뿌옇게 됐다. 


양손에 아이들을 안고 떨어뜨리지 않으려 기를 쓰느라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시기.


동생도 그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다면 내 몸은 바스러져도 상관이 없으리라는, 어디서 갑자기 왔는지 모를 만큼 예쁜 아이들이 내 곁에서 건강하게 있어준다면, 기꺼이 나는 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으리라는.


완연히 자리 잡은 아이들과의 행복이 달아날까 봐 문득 두려워지는 밤이 있다. 잘 자라며 입을 맞추고 보낸 것이, 어제도 오늘도 그랬듯 당연하게 함께인 나와 아이들의 마지막이면 어쩌나. 끝도 없이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오는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한참 동안 아이들의 발을 만지작거린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도무지 을 이루기 힘든 이런 밤, 아이들과 보낸 오늘이 특별히 더 행복했기에 내일이 간절해지는 것이겠거니, 버스럭거리는 마음을 다독다독 두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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