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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Oct 16. 2020

엄마는 뭘 좋아해요?

커다란 테이블에 색종이와 색연필들이 널려져 있고 바닥에는 블록들이 쏟아져있다. 사방이 온통 빨갛고 노랗고 파랗다. 아이들은 스케치북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접는다. 그러다 블록을 뚝딱뚝딱 쌓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나는 빨간색이 좋아.”
“나는 공룡이 사는 집을 만들어야지.”
“나는 종이팽이를 접을 거야.”
 
많지도 않은 선택지들 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잘도 찾아내서 싸우지도 않고 놀고 있는 것이 예뻐 가만히 보고 있자니 쌓여 있는 설거지와 빨래 거리들이 퍼뜩 생각난다. 하지만 이내 더 주저앉아 있고 싶은 게으름이 발동해버려 잔뜩 밀린 집안일을 순식간에 미뤄두고 잠시 멍하게 있다 보면 이런저런 걱정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얼굴에 뭉게뭉게 피어버린 걱정꽃을 어느 틈에 들켜버리기라도 한 건지 쉴 새 없이 종알거리고 바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한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뭘 좋아해요?”




글쎄, 내가 뭘 좋아하더라.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선뜻해 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그 무엇이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색종이와 색연필과 블록으로 만들어 줄 준비태세를 취한다. 아이들에게 별이라도 따오라 할까, 달이라도 따오라 할까. 엄마 마음속에 가득한 미련들을 아이들은 알 리가 없다.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엄마를 기다리다가 색종이로 하트를 접거나 블록으로 멋들어진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하트를 예쁘게 접어 엄마에게 줘야지, 멋있는 집을 지어 엄마에게 줘야지,라고 하면서.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주,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저 질문을 하곤 한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색깔을 불현듯 묻는다든지.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눈에 담기 시작한 총천연의 색깔들 중에 마땅히 골라 대답할 것이 없었는데 몇 해전 동네에 만들어졌던 유채꽃밭이 기억이 났다.
 
“노란색. 엄마는 노란색이 좋아.”
 
그렇게 대답한 순간부터 아이들은 노란색 종이로 접은 꽃이나 노란색 블록으로만 만든 것들을 내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노란색이니까 이건 엄마 거야.”
그리고 나는 그렇게 노란색을 가장 좋아하게 됐다.
 
때로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아이들은 내게 좋아하는 음식을 묻기도 한다. 내가 자주 만드는 음식이나 자주 시켜먹는 음식들은 말 그대로 자주 먹는 음식들이지 내가 좋아서 먹는 음식들은 아니다. 만들기 쉽거나, 한 끼로 때우기 충분하거나 하면, 그거면 되었다고 여겼다. 아니 무엇보다, 뭐가 맛있고 뭐가 먹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본지는 꽤 됐다. 편식하려는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있는지 그중에 맛있는 음식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고 싶으면서 정작 나는 만들기 쉽고 먹기 쉬운 음식들이면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혼자서 조용히 먹는 음식이 제일 좋아.”
 
이미 차리느라 질리고 먹이느라 지치고 치우느라 피로해져 본 나는 고작 저런 볼멘소리를 해버린다. 아이들은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재잘대며 먹기 바쁘다.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한 엄마 탓에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란걸 어찌해줄 수가 없어진 아이들은 금세 “이거 정말 맛있다!”, “엄마는 요리사야.” 라며 위로라도 하려는 듯 엄마를 추켜세운다. 나는 한 차례 더 못나고 옹졸해졌다.
 
 “엄마는 뭘 하는 게 제일 좋아요?”
 
아이를 낳고 밤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거의 없는데 유독 더 그러한 밤을 보내고 났을 때 아이들이 묻는다. 그럴 때의 나는 지난밤 자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을 무엇으로라도 받고 싶은 욕구로 똘똘 뭉쳐있다. 어떻게든 기어이 짬을 내어 낮잠을 잘 시간을 만든다든지 그게 여의치 않다면 다디단 음식을 마구 먹어댄다든지. 아마 내쉬는 숨과 짓는 표정에도 피곤함과 불만이 묻어날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는 엄마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엄마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이 보이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는 다 모르겠고, 그냥 누워서 자고만 싶다. 그러니 엄마 좀 자게 해 줘, 라는 마음이 불쑥 입 밖으로 나가버린다.
 
“엄마는 자고 싶은 만큼 자고 푹 쉬는 게 제일 좋아.”
 
아이들의 의중을 헤아리기도 전에 나와버린 대답에는 내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가 너희들이라는 메시지가 듬뿍 실려 버렸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대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기껏 얼굴에서 피곤함과 불만을 지워내려는 시늉을 급하게 하고 최선의 대답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을 수없이 받았고 참기 힘들다는 생각도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도망칠 방법은 없었던, 헤아릴 수 없는 밤들이 결코 아이들 탓은 아닌데. 입이 꾹 닫힌 아이들을 보며 후회가 밀려오는 찰나, 나는 못나기도 참 못난 대답으로 아이들 입을 막아버린 못난 엄마가 되었다.
 
 좋아하는 음식도, 좋아하는 색깔도, 좋아하는 그 어떤 것도 희미해져 버렸다. 나는 그것들이 내가 아이들 때문에 양보하고 포기한 것 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고스란히 피해의식 비슷한 것으로 남아버렸고 나는 어느새 감당하고 인내하는 어머니상을 흉내 내고 있었다. 어쭙잖게 시늉한 엄마의 희생을 아이들에게 내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었던 어느 날, 새로 산 대용량의 색종이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옹기종기 앉아 종이 접기를 하던 아이들이 잰걸음으로 괜스레 왔다 갔다 바빴던 내게 무슨 색이 좋은지, 뭘 가지고 싶은지를 물었었는데 대충대충 건성으로 대답해버리고 잊고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고단한 몸으로 방에 들어갔을 때, 어지럽게 늘어져 있던 화장대 위에 차분히 올려진 빨간색 하트와 노란색 개구리, 초록색 넥타이를 발견하고서는 목이 칵 메이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 다 내가 대답했던 대로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알고 싶어 진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알게 된다면 기억해두었다가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 예쁜 마음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던 것보다 훨씬 그 이전에, 일을 마치고 늦게 서야 돌아오는 엄마를 위해 깨금발을 딛고 설거지를 해놓았던 것 같이,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했던 일들. 그러나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물어본 적은 없다. 아마, 물어봤었어도 지금의 나처럼 엄마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하루하루는 고단했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기에는 엄마가 먼저 챙겨야 할 다른 것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의 아이들처럼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면, 지금의 나와 같이 젊었던 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한 번쯤 떠올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고 아까운 것은 내가 아이였던 그때에도, 엄마인 지금도 여전히 많다.
 
나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예쁘고 멋진 것들로 가득 차기를 누구보다 원했다.
아이들은 나의 대답을 다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혼자 먹는 음식, 엄마가 하고 싶은 건 자고 싶은 만큼 잠자는 것.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엄마는 늘 피곤했고 혼자 있고 싶어 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을까 봐 아찔해졌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마냥 궁금했던 아이들에게 그때 조금 더 예쁘고 멋진 대답을 해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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