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백주간 제22주 차(판관 1-16) 묵상
그 이름을 ‘주님은 평화’라고 하였다.(판관 6, 24 참조)
지난 9월 어느 날 저녁 시간입니다. 등에 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 후에 퇴원하고 며칠이 지나 장모님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많은 환자들의 모습에 갑자기 제 마음에 혼란이 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녁 식사가 나오자 장모님이 얼굴을 찡그리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왜 그러세요.”라고 하자 장모님은 “병원 밥은 맛이 없어.”라고 말씀하며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저녁을 마쳤습니다. 순간 “이제 좀 드세요. 잘 드셔야 빨리 회복하죠. 맨날 그렇게 반찬 투정을 하시면 oo이 엄마가 힘들어요.”라고 아내의 걱정이 섞인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자 장모님은 웃으시면서 “자네 마음, 잘 알아. 내 걱정에 그러는 거. 그래. 자네 말 대로 잘 먹을게.”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날 이후 장모님은 잘 드시며 무사히 퇴원하고 회복도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지난 두 달 여 동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장모님의 건강이 그렇게 호전되어 가고 간호에 지쳐 있던 아내와 저는 얼마 전에 잠시 부산을 찾았습니다. 20년 만에 가는 길은 설렜습니다. 몇 년 전에 딸과 갔다 온 아내는 저처럼 설렘은 없다며 열차 안에서 이곳저곳 맛 집을 주절거렸습니다. 점심 즈음에 도착한 부산역. 아내가 벼르던 아귀 수육으로 점심을 한 후에 호텔에 짐을 풀고 광안리해수욕장으로 향하던 지하철을 안이었습니다. 차 안 풍경을 둘러보던 제가 조금 놀란 목소리로 나지막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oo엄마, 여기 꼭 일본 지하철 안 같아.”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래, 맞아. 그럴 거야. 그전에 왔을 때 나도 그랬어. 사람들 옷차림도 지하철 안이 조용한 것도. 많이 비슷해.”
그 순간 저는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잃어버린 인연 속 온기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면서 말이죠.
이 서사가 피어오른 이유를 안 것은 여행길에서 돌아오던 날 택시 안에서였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부산역으로 가는 택시 안입니다.
제가 말합니다.
“기사님, 제가 20년 만에 와보니 부산이 일본과 많이 비슷하네요. 제가 일본에서 대학을 다녀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외모나 지하철 안 분위기도 그렇고 어디를 가나 친절하네요.”
기사가 말합니다.
“네, 그럴 겁니다. 오래전부터 이곳 사람들 중에 일본사람들과 결혼한 분들도 많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왕래하기 좋아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저희도 토요일에 일을 마친 후에 배 타고 일본 후쿠오카 항에 내려 그곳에서 술 한 잔 하고 다음 날에 오기도 하니까요.”
제가 말합니다.
“아... 그렇군요. 배편으로 후쿠오카라.... 낭만적입니다.”
배 멀미 때문에 크루즈 여행을 주저하는 아내가 말합니다.
“배가 흔들이지 않나요?”그러자 기사는 그의 여행담을 터트리듯 웃으면서 말합니다.
“아닙니다. 크루즈라 배 안에서는 전혀 못 느낍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합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도착한 광안리해수욕장의 해안가. 너울대는 파도에 몸을 실은 서퍼 너머의 해안선 위로 비추는 해의 얼굴에서 평화가 불어옵니다. 아내와 저는 사진에 그 시간을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다음 날에 우리는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모래알들을 누르며 걷다가 해안선을 지우며 식어가는 감빛 해의 모습에서 주 하느님의 숨결을 다시 느끼는 순간을 맞습니다. 미성숙한 율동으로 춤추는 파도 사이를 가로 질어 부는 바람 위로 평화가 올라타 제게 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처럼 ‘주님은 평화다.’라고 말하듯이.
하루를 마감하거나 시작하기 전에 가는 집 앞 공원에서는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평화가 제 마음으로 들어옵니다. 지난 후쿠오카 여행길에서도 이번 부산행에서도 그랬듯 대자연을 걷다 보면 제 옷깃에 살포시 머무는 하느님의 숨결에서 저는 언제나 평화를 느낍니다. 그리고 살아 있음에 그 시간 그곳에 있음을 주님께 감사합니다.
ps: 주 하느님, 우리가 어디에서든 언제든 주님이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물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사진: 김곤(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