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백주간 제23주 차(판관 17-21, 롯 1-4) 묵상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려고 왔으니 그분께서 너에게 충분히 보상해 주시기를 빈다.(롯 2, 12 참조)
어느 아침 산책길에 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이 우산 위를 두드리자 저는 문을 엽니다. 추억의 한쪽 문을....
비 오는 날 친구가 여자 친구와 있다며 같이 술 한잔 하자고 주점으로 불러 가면 이렇게 말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니들 또 비디오 찍냐? ㅋㅋㅋ"
감시카메라도 핸드폰도 없는 세상이라 가능했던 농담이었습니다.
청춘들이 모이던 또 다른 장소는 대학가나 번화가의 경양식집이었습니다. 감빛 조명과 커튼으로 가린 은은한 불빛 아래의 테이블은 연애에 목마른 청춘들을 그곳으로 몰려들게 했습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안은 더 북적거렸습니다. 낭만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갈 곳이 별로 없었던 놀이문화 때문이었을까. 청춘들은 그곳으로 모였습니다. 소개팅도 주로 그곳에서 했습니다. 순수함으로 가득한 맑은 눈동자로 서로를 마주 보며 미래 목표가 뭐냐, 이상형은?, 좋아하는 팝송은 뭐냐 등을 문답하며 얘기꽃을 피웁니다. 그들 중에는 돈가스 맛에는 일도 관심 없고 '어떻게 해야 저 애 옆에 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온갖 수단을 짜듯 궁리해 내는 사이 가슴은 두근두근 콩닥콩닥 난리가 나고. 아직 20대 초반. 연애 고수도 아니고 시간만 보내다가 그곳을 나오면서 누구는 용기 내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산 같이 쓸까?
“..........."
침묵의 허락에 그녀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서 우산 내가 들게, 라면서 팔은 은근슬쩍 그녀의 어깨로 올리고 걷습니다.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그날 이후 둘은 연인의 길을 걷습니다. 물론 그들이 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는 연애만, 어떤 커플은 오랫동안 일편단심으로 지내다가 결혼식장에서 팔짱을 하고 걸어갔습니다. 변하지 않기로 맹세하면서 한족 날개가 되어 주겠다고 말입니다.
지난 9월에 등의 피부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 후 퇴원하고 집에 와서 수술 부위를 소독해야 하는 데 제 손이 닿지 않은 부위라서 혼자서 아무리 하려 해도 할 수 없어 아내의 손을 빌려야 했습니다. 피부재생크림을 바르기 위해 아내의 손은 지금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저의 등을 향합니다. 얼마 전에는 다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엉덩이 한쪽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겁니다. 천만다행인 것이 용종이 항문으로 이어지지 않아 큰 수술 없이 다음 날 퇴원하여 수술부위를 처치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술 부위도 제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라 아내의 손을 매일 빌립니다. 그러면서 한쪽 날개의 소중함에 주님께 감사합니다.
어제 집 앞 공원길을 산책하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결국 오진이었지만 다니던 병원에서 수술하자고 했을 때 했으면 지금도 병원침실에 누워있을 텐데. 정말 감사할 일이다. 하느님이 지켜주신 덕이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주님이 우리에게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신 거지.”
진료받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수술도 몇 개월 대기해야 할 수 있는 서울 S대병원에서 저의 진료와 수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구나.’라며 수술 당일은 “절개해서 열어봐야 알겠지만 항문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담당의사의 말처럼 ‘큰 수술은 아니겠구나.‘라는 확신 속에 수술실로 향했던 기억입니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에 우산 없이 리어카를 밀며 가던 어떤 어르신에게 다가가 자신의 우산 한쪽을 내어주던 여성이 온라인상에 화제였습니다. 누구는 날개 단 천사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어려운 이웃들에게는 더 혹독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경기도 녹록지 않은 요즈음 누군가에게 마음속 날개를 펴주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처럼 늘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많은 보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우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이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며 너희 마음속 날개를 펴보아라, 내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ps: 주 하느님, 주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마음속 날개를 활짝 펴 따스한 사랑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날이 되게 하소서.
사진: 김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