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얘기했듯이 글쓰기와 내가 만나는 데에는 코로나도 한몫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입원과 휴직을 하면서 글쓰기와 만남은 내 마음을 돌보는 데에 힘이 되었다. 글을 써가면서 내 마음을 정화하고 절제와 순응의 섭리를 배운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조급함보다 느긋함이 의욕보다는 여유로움에, 나에게 솔직하니 마음을 비우며 절제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그 원천은 건강한 마음에서 왔다. 어제와 내일보다 오늘, 이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매일 하니 행복하고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가 치료제가 된 셈이다. 글쓰기는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며 그의 산물은 책이다.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더 많은 돈, 더 큰 집, 더 좋은 차, 더 편리한 핸드폰... 그렇다면 그 만족은 지속되는가.
내 옷장에는 15년 이상이 되어가는 겨울 코트와 잠바가, 호주머니에는 지갑이 있다. 얼마 전 아침에 기온이 뚝 떨어져 그 코트를 옷장에서 꺼내며 색이 많이 바랜 모습에 아내가 "입어도 괜찮을까" 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코트를 몸에 걸쳐보며 "괜찮지 않아?"라고 웃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내는 "올해까지는 괜찮겠다."라고 말했다. 아내가 오래전 생일선물로 사준 지갑은 다 해졌지만 지금도 소중하게 가지고 다닌다. 어쩌면 이 물건들은 평생 같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질적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도에 따라 변한다. 그렇다면 정신적 가치는 어떨까. 자아실현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그 가치는 물질적 가치보다 쉽게 변하지 않고 진화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 국가의 힘을 나타내는 데에도 군사력이나 경제력 등 강성권력보다는 문화, 역사, 예술 등 연성권력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가는 시대다. 최근에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우리의 국가대표 축구팀이 중국을 방문하는 날에 많은 중국 팬들이 공항에 나와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예전에는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케이팝, 영화 등에 이어서 스포츠까지 우리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퍼진 셈이다. 더불어 국가의 힘도 커졌다. 내가 일본에서 공부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개발도상국이고 일본보다 못 사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그 위상이 높다. 주말에 경복궁 근처를 가면 외국인들로 북새통이다. 예전에는 장소가 명동으로 관광객은 일본인으로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명동뿐만 아니라 광화문, 안국동, 종로, 강남 등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예술, 문화 등의 인기 덕일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여전히 경제력의 힘은 크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면 더할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난 지인은 기다렸던 여행사에서 연락이 와 해외여행가이드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백세시대에 적어도 80까지는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처럼 행복할 수 없다며 기뻐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10회 정도 활동을 목표로 한다면서 돈보다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여행 가이드를 우리 나이에 시작하는 사람은 드물고 하니 "70세까지 활동한 것을 잘 기록하였다가 나중에 책을 내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그는 "네, 그래야죠. 제가 쌓은 귀중한 자산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를 주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매일 산책하며 왜 이토록 글쓰기에 목말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해보려 한다. 걸으며 사유의 광야에서 건네는 언어의 조각들에서 어떤 이는 용기를 또 누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며... 그리고 그 원천은 글의 파장에 있으며, 그것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서 터져 나오는 입자들이 소리 없는 말이 되어 우주의 에너지와 합체를 이루어 독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울려 퍼지는 힘이요, 그 안에 글쓰기의 가치가 숨겨져 있다는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