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고 걷는다."
내가 산책을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최근에 정동길을 출발하여 서울역까지 걸었다. 옛 강원산업 터에는 돈의문박물관이 들어서 있었고 길을 접어들어 경향신문을 지나고 조금 걷다 보면 이화여고 후문이 보인다. 그곳에서는 오선지를 타고 흘러나오는 앙상블 소리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여름 한낮 정동길의 대지를 적시는 클래식 선율에 나의 땀방울도 실어본다.
다시 걸음을 옮겨 걷다 보니 나오는 정동극장, 그리고 잠시 후 덕수궁돌담길. 이문세 씨의 "광화문연가"를 소환하고 흥얼거리며, 초겨울 검정바바리에 옷깃을 세우고 낙엽을 밟으며 그곳을 지나가던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곳에 있음에 감사하며...
공원이나 길가를 걷는 행위는 단순히 건강을 위한 기능에서 언어들과 산책하는 사유의 시간으로 진화해 간다. 글쓰기를 하고 난 후에 산책을 나가면 부유하는 문장들을 메모하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가고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허벅지의 근육도 두꺼워지고 사유의 힘도 단단해진다. 그렇게 걷기는 글쓰기에 힘을 실었다.
산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대략 16년 전까지 나는 산책과 거리가 멀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면서 좋아하던 운동을 가까이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업무에 치이다 보니까....,라는 이유는 늘 핑갯거리로 작용했다.
1989년 대학을 다니며 일본에 살 때다. 몸짱 열풍으로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스포츠센터가 생겼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고나 할까. 집 근처 헬스장에 회원 등록을 하고 주말이면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까지.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에 다니면서 결혼도 하면서 헬스장 찾는 것을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건강을 위해 오래전에 시작한 것이 산책이다. 그러면서 어느덧 걷는 행위에 '퇴고'라는 새 기능이 생겼다. 자연으로 나가면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춤춘다. 걷다가 멈추고 쓰고 다시 걷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글을 쓸 수 있다. 산책하며 느꼈던 행복한 감정을 글에 녹여 넣는다.
그리고 찾아온 위기. 무릎에 이상이 온 것이다. 의사는 너무 많이 걸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하긴 지난 1년 동안 글쓰기를 하면서 엄청 걸었다. 매일 2시간 이상을, 어떤 날은 그 이상을 걸었다. 그러자 얼마 전에 너무 걸었던지 무릎에 이상이 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실내자전거.
실내자전거를 타보니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허벅지의 근육이 눈에 띄게 단단해진 것 외에 다른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걷는 속도다. 이전보다 걸음걸이가 빨라지고 걸으면서 허벅지가 무릎을 받쳐준다는 느낌이다. 두꺼운 허벅지를 자랑했던 때에 인지하지 못했던 촉이다. 아마 그때는 당연히 여겼기에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무엇이 간절할 때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기에. 그 감사함에 감사를 덧칠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할 따름이란 것도. 행복도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행복하려고 산책을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