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는 건 아니고요. 일단 안녕히 계세요.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오는 순간부터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진짜 뭐 하고 사냐.’ 이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지만, 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서 내 인생에서 쉴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기에 갑자기 생긴 공백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초반까지는 학교 – 운동 – 집을 반복하면서 살고,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학교 – 도서관 – 집 이 루트를 반복하며 살았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곳에 매진하는 성격이라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를 않았다.
세상에 병원이 그곳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병원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병원을 나온 이유가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일단 기본적인 생활 영위가 되지 않았기에 병원을 나오게 된 것이다. 퇴사하자마 자 다른 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을 시작하여 친구와 동기들이 난리가 났다.
“야! 너 방금 퇴사했어. 근데 무슨 병원에 들어가!!”
“제발 좀 쉬어라.”
나는 주변의 성화에 알겠다고 하며 ‘알바몬’을 뒤적거렸다. 병원 안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 카페의 로망을 이 번에 한 번 실현해 보는 거야! 하면서 알바를 찾아봤지만 다들 경력직을 좋아하신다. 경력 없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경력 쌓아요!! 억울하네...
퇴사한 지 3일째 되던 날 불안감에 휩싸여 병원을 찾았다 (여기서 나오는 병원은 내가 환자로 간 병원이다). 대학교 때부터 진료를 봤던 주치의 선생님이기 때문에 나는 날 공감해 주시겠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진료실에 들어가 앉았다.
“얼굴이 더 어두워졌네.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요. 저 퇴사하고 잠 푹 자서 꽤 잘 자서 얼굴 좋은데요.”
“퇴사 잘했네! 축하한다. 이제 놀아.”
‘이 의사가 불난 집에 기름 붓나?’라는 마음이 가득 들었다. 나는 나의 상태를 세세하게 말했다.
“쉬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무 불안해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어본다고 네가 쉬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냥 뒹굴고 놀아.”
‘하하 제가 노는 방법을 알면 이러고 있을까요. 선. 생. 님.’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주치의 선생님과 잘 맞는 듯하면서도 가끔 이렇게 열을 받을 때가 있다. 주치의와 환자이기 전에 사람 대 사람이니까 인간관계가 그렇듯 참았다. 그래서 나 뭐 하고, 살아야 하지? 하던 순간에 주치의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폐인처럼 살아봐! 잠 10시간 20시간 자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자고, 머리도 2~3일씩 감지 않고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네가 이 생활도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을 거야 그럼 그때 뭐 해볼지 생각해 봐”
저게 또 의사가 할 소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 아오는 길에 진료실에서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투성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해준 말이니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 오늘부터 폐인처럼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