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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작 김미희 Mar 14. 2021

(시 마중 이야기 4)
지식의 오르가즘,상상력​

-상상력이 없으면 죽은 지식이다

지식의 오르가즘, 그건 상상력이다



『잠자리』/김미희 

     

여기서 잘까? 

저기서 잘까? 


하루 종일 

잠 자리를 찾아 


기웃기웃 

날아다니는 

잠자리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면 명륜동쯤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구간이 있다. 지하철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 때 반짝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아~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하철에서 지상 철로 탈바꿈한 전철은 놀이기구라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훤히 보이는 바깥 풍경, 그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모텔 이름 하나. “잠자리 모텔” 


  콘크리트 지붕 위에 커다란 잠자리가 날개를 편 채 앉아있다. 전철은 달리고 달려 내게서 잠자리를 떼어놓는다. 잠자리가 날아서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그 모텔 주인이 궁금하다. 작명소에서 몇 만 원의 작명 값을 치르고 이름을 지어왔는지는 모르나 동음 이어를 제대로 살렸구나 하는 짧은 순간 내게 발견의 기쁨을 주었다. 잠자리와 잠 자리. 그렇게 시의 싹이 텄다. 


  안도현의 ‘연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연어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었다.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지식이란 참으로 허망한 것이다.” 


  백과사전이나 도감에는 잠자리는 만 개가 넘는 눈을 가졌고, 종류는 오천 종류가 넘는다는 것, 그들의 서식지, 생태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나 헛헛한 그 무엇이 남는다. 백과사전으로 안 되는 그 무엇, 바로 상상력이 빠져 있어서 생긴 허기이다. 상상력이 가미되면 지식은 희열을 준다. 지식의 오르가즘은 상상력을 얻어 비로소 경험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백과사전에 나타난 천편일률적인 지식을 세상을 바꿀 지식으로 바꾸는 힘은 상상력에 있다. 더 많이 상상하게 되고 더 많이 그리게 되는 것. 시를 읽어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효과이다. 


황소와 잠자리 /한인현

 

황소는 풀을 먹다 

풀밭에서 잠이 들고 

짱아는 혼자 놀다 

황소 뿔에 잠이 들고. 


  황소와 잠자리가 뛰노는 풀밭으로 우리를 단 몇 초 만에 모셔다 놓는다. 귀여운 잠자리 짱아는 영리해서 소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감각이 무딘 뿔에다 잠 자리를 마련했다. 예의 바른 잠자리이다. 쉬어가는 삯으로 잠자리는 황소에게 뭘 낼까? 돌침대처럼 매끈하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자리를 택한 짱아가 은근히 부럽기까지 하다. 시인이 짱아란 이름을 불러줬기에 우리는 금세 친근함을 느끼게 되었고 짱아는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잠자리가 되었다. 그 잠자리는 시인에게 이름을 하사받는 은혜를 입었다. 비로소 우리와 동격이 되었다. 친구가 되었다. 

  잠자리라는 시는 이 밖에도 무수하게 많다. 동일 존재(동일 제목)에 대한 시를 시리즈로 찾아 읽어보시라. 당신에게 지식의 오르가슴을 가져다줄 것이다. 


  시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상상력이 생긴다. 시가 마법을 건 것이다. 나는 이미 잠자리가 되어 날고 있다. 그 무엇이 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마법을 찾아 떠난다. 




오늘의 TIP:상상력을 키우려면 시를 읽어라. 

           돈을 주고 산 (동)시집은 제값을 한다.            

           도서관에 가면 (동)시집도 꼭 한 권씩 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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