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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작 김미희 Mar 17. 2021

(시 마중 이야기 6)
시 한 편에 한 생이 있다

시야 노래하여라. 나는 춤을 추리니

시야, 노래하여라 나는 춤을 추리니

  

호박/김미희 


쭈글 쭈글 호박꽃이 

동글동글 아기 낳고 


동글동글 아기가 

덩글덩글 자라서 


덩글덩글 호박덩이 

엉덩이가 무거워 


땅바닥에 넙적! 

주저앉았다  



  아이였을 때는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서 얼른얼른 지나갔으면 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시간은 더디 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내 기억으로는 결혼하고 부터였던 것 같다. 유행하는 말로 ‘품절녀’가 됐다는 절망이 더해졌기 때문이었을까? 나이를 잊을 만큼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다. 문득 문득 나이를 먹는 게 슬펐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씩이고 나는 결혼 한 게 좋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좋았다.  


  그때는 등단하기 전이었는데(나는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했고 동시 쓰는 사람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리 되었다. 우연처럼 운명처럼.)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동시 카드를 발견했다. 삼성출판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동시 카드 20장을 다 외웠다. 일부러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몇 번 읽다 보니 저절로 외워졌다. 차를 타고 가거나 애를 재울 때 애를 품에 안고 동시를 자장가 삼아 암송해줬다. 아이도 가만가만 들으며 잠이 들었다. 동시를 들려주는 엄마 목소리가 편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자장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이 노래를 동네 어른들이 자장가로 불러주는 것을 자주 들었다. 한인현의 섬집 아기. 이는 동요시이다. 시에다 곡이 붙여져 국민 동요가 되었다. 노래를 싫어하는 어른도 흔치 않지만 아이들은 유독 리듬을 좋아한다. 좋은 동시는 리듬을 잘 살려 쓴 시다. 


  '호박'이란 시는 읽으면 바로 노래가 된다. 그래서일까? 작곡가 김현성(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하신)씨도 노래로 만들었고 동요를 작곡하시는 정동수 씨도 작곡을 해서 음반 두 장에 각각 들어있다. 


  위 시 ‘호박’은 호박의 일생을 그렸다. 호박꽃이 쭈글쭈글 나이가 들어 좋은 이유는 아기를 낳을 수 있어서다. 나이 든 할머니가 생명을 낳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창세기 편에서 이삭을 낳은 사라 일처럼 기적이다. 할머니 꽃은 생명을 틔우고 난 후 스러진다. 시간 앞에 겸허하고 엄숙해진다. 자리를 내어주는 아름다움. 그래서 호박꽃은 위대하다. 그래서 “꽃"이다.

호박꽃 밑에 달린, 호박꽃이 낳은 아기, 동글동글 자라간다. 덩글덩글 익어간다. 그러다 결국 땅에 앉는다. 다른 곳이 아닌 땅에 주저앉는 건 본능이다. 땅이 새 생명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 살이를 닮은 호박의 한 살이. 시 한 편에 들어있다. 


 시골 우리 집을 둘러싼 텃밭 담장마다 지도에 길 내듯 뻗어가던 호박. 이 시를 쓰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내게로 왔다.  (내게 그렇게 오는 시는 정말 흔치 않다.)

가끔은 내 안에 내가 아닌 다른 누가 살고 있지 않나 싶을 때가 있다.

(동시영이란 시인이 그랬다.  시는 신이 가끔씩 걸어주는 전화라고.)

내 안에 사는 이가 노래를 불렀다. (그 시인의 말처럼 신이 전화를 건 것인지도 모르지.)

나는 받아 적으며 춤을 추었다. 


  아래 시를 한 편 더 보자. 몇 백 년 전부터 피어있었을 감자꽃! 감자꽃에 깃든 삶의 진리를 4행만으로 일깨워준다. 응축의 힘, 곧 시의 힘이다. 진리는 항상 단순하고 쉬운 법이다. 그런데 그 진리를 담아내기란 참 쉽지 않다. 


  감자꽃 

              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오늘의 TIP:자장가로 동시를 암송하면 좋다.           

             리듬이 살아있어야 좋은 (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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