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작 김미희 Mar 10. 2021

(시 마중 이야기 1)
시인의 아버지, 시를 쓰다

-까불지 않기, 복수


까불지 마/ 김미희


할머니가 키로 

보리를 까분다  

거푸거푸 까불까불 

가벼이 들까부는 녀석들은 

냉큼 키 밖으로

쫓겨난다 

묵직하게 듬직하게

자리를 지킨 알곡들만

키 안쪽을 차지했다

                                -동시집 '네 잎 클로버 찾기' 중에서


우리 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사셨다.

지금은 몸이 고장 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셔서 텃밭에 푸성귀 농사를 짓는 게 소일거리의 전부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 조기교육은 아버지께서 시키셨다.

섬에서 뭍으로 공부하러 간 오빠들에게 일곱 살 때부터 편지를 쓰게 하셨다. 고로 나는 아버지가 입학한 셋째 오빠에게 한글 가르치는 것 보며 어깨너머 입학 전에 한글을 깨쳤다.

자꾸 고쳐 써야 좋은 글이 된다며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 지

(물론 이런 전문 용어는 쓰지 않으셨다.) 

강조하시며  고쳐 써 오게 했다. 아버지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은 편지는 하루에 두 번 왕래하는 배를 타고 건너가 오빠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오래 전이다.

푸른문학상 수상 시집이 출간되어 보내드렸다.

읽으시고는 내게 전화하셔서,

 "세 명 꺼 다 봐도 뭐, 별거 없더구만. 이런 걸 상 받았다고 책 내고 그랬냐?"

 털털 웃으시며 그러셨다. 

 차근차근 음미하면서 읽어보시라 했더니 ,

 "여러 번 읽어봤지." 하신다. 

 나는 속으로 어렵소, 정말 어렵소이다를 연발했다. 

 모든 시는 독자의 몫이거늘, 작가의 설명은 부질없는 짓이기에 말을 아꼈다. 


다음 날인가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느닷없이 시를 썼다며 들어보란다. 

나는 열심히 받아 적었다. 


확인/김준택


여보, 나 사랑해?

응,그럼!

얼마만큼?

하늘만큼 땅만큼

정말?

 아니,달만큼!

정말?

응 별만큼! 별로 안 사랑혀!  



나는 드디어 복수를 하게 되었다.

"이게 뭔데? 아버지!"  

했더니, 삐지셨나? 아버지의 응수는,

 "니 시도 별거 아니데." 

 나는 할 말이 없다. 우리 아버지가 이겼다. 함부로 까불면 안 되겠다. 

 겸손해야 함을 또 아버지께 배운다.


 이 한 편의 시를 쓰시고 우리 아버지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별만큼 사랑해.'가 '별로 안 사랑혀'가 되기까지 아버지의 메타포는 거기 숨겨두신 거다. 

 내 시는 아버지에게 시 창작의 열의를 불러일으켰으니 그것으로 단단히 한몫을 한 것이다. 

나는 내가 쓰는 시는 이랬으면 좋겠다.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어!" 용기를 주는 것.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아버지도 시를 쓰셨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의 TIP: 여러 번 고쳐 써라.                 

                 그게 글쓰기의 왕도다.




네 잎 클로버 찾기, 김미희, 푸른책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