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불지 않기, 복수
-동시집 '네 잎 클로버 찾기' 중에서
우리 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사셨다.
지금은 몸이 고장 난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셔서 텃밭에 푸성귀 농사를 짓는 게 소일거리의 전부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 조기교육은 아버지께서 시키셨다.
섬에서 뭍으로 공부하러 간 오빠들에게 일곱 살 때부터 편지를 쓰게 하셨다. 고로 나는 아버지가 입학한 셋째 오빠에게 한글 가르치는 것 보며 어깨너머 입학 전에 한글을 깨쳤다.
자꾸 고쳐 써야 좋은 글이 된다며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 지
(물론 이런 전문 용어는 쓰지 않으셨다.)
강조하시며 고쳐 써 오게 했다. 아버지에게 오케이 사인을 받은 편지는 하루에 두 번 왕래하는 배를 타고 건너가 오빠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오래 전이다.
푸른문학상 수상 시집이 출간되어 보내드렸다.
읽으시고는 내게 전화하셔서,
"세 명 꺼 다 봐도 뭐, 별거 없더구만. 이런 걸 상 받았다고 책 내고 그랬냐?"
털털 웃으시며 그러셨다.
차근차근 음미하면서 읽어보시라 했더니 ,
"여러 번 읽어봤지." 하신다.
나는 속으로 어렵소, 정말 어렵소이다를 연발했다.
모든 시는 독자의 몫이거늘, 작가의 설명은 부질없는 짓이기에 말을 아꼈다.
다음 날인가 아버지가 전화하셨다. 느닷없이 시를 썼다며 들어보란다.
나는 열심히 받아 적었다.
나는 드디어 복수를 하게 되었다.
"이게 뭔데? 아버지!"
했더니, 삐지셨나? 아버지의 응수는,
"니 시도 별거 아니데."
나는 할 말이 없다. 우리 아버지가 이겼다. 함부로 까불면 안 되겠다.
겸손해야 함을 또 아버지께 배운다.
이 한 편의 시를 쓰시고 우리 아버지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별만큼 사랑해.'가 '별로 안 사랑혀'가 되기까지 아버지의 메타포는 거기 숨겨두신 거다.
내 시는 아버지에게 시 창작의 열의를 불러일으켰으니 그것으로 단단히 한몫을 한 것이다.
나는 내가 쓰는 시는 이랬으면 좋겠다.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어!" 용기를 주는 것.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우리 아버지도 시를 쓰셨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늘의 TIP: 여러 번 고쳐 써라.
그게 글쓰기의 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