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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Jan 28. 2020

정말 여성 상위 사회인가요?

중국의 여성관과 결혼관

앞치마를  남편이 부엌에서 ''질을 하고, 부인은 소파에 앉아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며 TV 본다. 중국 여성의 가정  지위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방송에 많이 소개되는 풍경이다.


여성의 재산권, 참정권, 직업을 보장한 사회주의 개혁, 그리고  자녀 정책으로 인한 남초 현상힘입어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었다고들 한다. 많은 중국 여성이 거침없고 애정 표현에 적극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중국을 여성 상위 사회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중국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정말 그런 것일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들의  역할 인식이 유교 가부장 문화를 공유한 한국과 별반 다를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여성도 결코 그런 사회문화가 주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결혼 때문에 고통받는 중국 여성


10  베이징에서 만난  선생님은 명문대 박사에 화려한 외모와 좋은 집안 배경을 가진 20 후반 여성이었다. 모교에서 대학원과 어학당 출강을 하며 향후 정규 교수도 노려볼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하나 부족 없어 보이는 그녀마음을 짓누르는  가지가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 소개팅도   들어온다, 학력이 너무 높아 상대가 부담스러워한다, 이러다 결혼을  하는  아닐까, 그런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맞선에서 만난 남자와 한두  사귀다 헤어지고는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절망이 다크서클을 넘어 얼굴을 뒤덮을 정도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미완성 상태, 결혼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에 사로잡힌 그녀에겐 무슨 말도 소용없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도심 공원에서 주말마다 대규모 결혼 시장이 열린다. 예비 며느리, 예비 사위를 찾기 위해 자식 프로필을 들고 나온 부모들로 가득한 맞선 시장이다. 실제 대규모 단체 맞선도 열리곤 한다. 이런 결혼 압박 속에서 많은 여성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화장품 브랜드 SK-Ⅱ 2016 중국에서 이런 결혼시장 문화를 소재로 광고를 만들어 화제를 기도 했.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사회적 편견을 바로 잡고, 보다 주체적이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응원하는 '운명을 바꿔라(#changedestiny)' 캠페인이었다.


SK-Ⅱ의 '운명을 바꿔라' 캠페인

https://youtu.be/irfd74z52Cw


리장에서 만난 린뚸뚸 언니의 사연은 좀 더 구구절절하다. 이혼 위기에 놓인 40대 여성의 전형이었다.

“우리 남편은 나를 거들떠도 안 봐. 무심하기 짝이 없어. 결혼 후에 제대로 생활비도 가져다준 적 없어. 자기가 좀 버는 건 자기 혼자 쓰고 한량처럼 살아. 내가 사업해서 집안을 다 먹여 살렸는데, 한 번도 존중을 안 해줬어. 파산을 하니까 이제는 시댁에서도 나를 벌레 보듯 해. 어쩜 이럴 수 있니! 정말 이혼까진 안 하려고 참았는데, 이젠 안 되겠어. 그런데 남편이 이혼을 해줄지 모르겠다.”


하소연을 하는 언니에게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민 회장이 냉정한 조언을 건넸다. 자신은 결혼 생활에 문제가 없고, 남편과의 관계도 좋다고. 언니는 부러운 눈빛으로 되물었다.

“너는 남편이랑 잘 맞는구나?”

한참 만에 민 회장은 속 깊은 얘기를 꺼냈다.

“내가 다 맞춰줘. 그러니까 별 문제가 없어.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별로 상관을 안 해. 너만 그렇게 사는 게 힘든 것 같지? 사업 잘 나가고 가정에 아무 문제없는 나도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 지금처럼 유지하지 않으면 이 안정이 깨질까 봐.”

이쯤 되니 누가 더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명절 뒤 이혼 급증, 명절 증후군 극복 방법, 명절 피로·스트레스로 인한 대상포진 주의”. 한국에선 올해도 어김없이 가부장적 명절이 남긴 후유증이 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결혼은 해도 불행, 안 해도 불행이다. 뭐가 문제인 걸까?


여기에 힌트를 주는 곳이 있다. ‘결혼’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윈난성과 쓰촨성 경계에 있는 모쒀인 집거지 루구후(泸沽湖, 로고호).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신비한 ‘여인 왕국’이 있다는 곳. 나는 루구후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루구후와 리거 반도


여자 혼자 여행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리장에서 시외버스로 네 시간을 달리면 루구후에 도착한다. ‘여인국’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서양 배낭여행자와 나를 빼면 모두 커플 혹은 남성이었다. 혼자 온 여성은 호기심 많은 중국인의 타깃이 된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신기해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낸다. 몇 차례 여행을 하면서 나는 한국과 중국 모두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리장에서 루구후로 가는 길에 본 옥빛 금사강(왼쪽), 루구후 풍경구 입장권을 살 때 받을 수 있는 ‘여인국 여권’(오른쪽)


한국에선 혼자 울릉도에 갔다가 황당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비용을 아껴볼 요량으로 패키지 관광을 예약했을 때 일이다. 팀에 합류해보니 일행 없이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식사를 할 때도 아줌마 아저씨 커플들 틈에 끼어 밥을 먹었다. 둘째 날은 개별 일정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독도행 배를 타러 나섰다. 날씨가 흐려 입도는 무산되었지만, 멀리서나마 독도를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 식사 중인 일행에 합류했다. 겨우 한나절만인데 식당에서 다시 만난 아줌마 아저씨들은 나를 보며 반색했다.

“사실은 낮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 원인이 나였을 거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침밥을 먹으러 모인 일행은 내가 오지 않자 무척 걱정을 했단다.

“혼자 온 아가씨가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야?”

누가 한 마디 던지자 모두들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혹시 나쁜 마음을 먹고 세상을 등진 건 아닐까?’

결국 민박집 사장님까지 불러서 내 방 문을 열어보았다고 한다. 사람은 간 데 없고 방 안엔 침구와 짐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정말 어디 뛰어들러 간 건가?’

이 때 뒤늦게 가이드가 나타났다. 호들갑을 떠는 일행에게 상황을 설명하고서야 사태는 일단락되었다고 한다. 저녁밥을 먹으며 웃지 못 할 해프닝을 전해들은 나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제가 그렇게 사연 있는 여자처럼 보였어요?”


남자 혼자 여행은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여자 혼자 여행은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중국이라고 달랐을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물었다.

“어디서‘들’ 오셨어요? 어디에‘들’ 묵으세요? 비용은 얼마나‘들’ 내셨어요?”

당연히 일행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질문을 한다. 혼자라고 하면 ‘왜요?’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여자 혼자 여행을 다 왔냐?”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심지어 ‘여인 왕국’이라 불리는 루구후 가는 길에도 이런 질문을 들어야 했다.


버스에서 만난 다롄 출신 50대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순박한 아저씨와 카리스마 넘치는 아줌마는 “아가씨 혼자니까, 안전하게 우리와 같은 객잔에 묵도록 해요.”라며 나를 이끌었다. 선의로 하는 말에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20~30대 같았으면 생각대로 말했을 테지만, 요즘은 노처녀 히스테리로 보일까봐 마음껏 성질을 부리지도 못한다. 결국 어느 마을에 묵을지도 정하지 못한 채 첫 정류장에 도착한 부부를 안내한 건 나였다. 나는 루구후 호수가에서 가장 번화한 서쪽 마을 다뤄쑤이(大洛水, 대락수) 대신 원시적 모습이 조금 더 남아있는 조용한 마을을 찾아 북쪽으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20분쯤 더 달려 리거반도(里格半岛, 리격반도)가 보이는 리거춘(里格村)에 도착했다. 리거반도는 루구후 풍경 사진에 반드시 등장하는 대표 명소다. 마을 입구부터 몇 군데 둘러본 부부가 숙소로 정한 곳은 1박에 1만 원을 받는 차이샤만텐(彩霞漫天) 객잔이었다.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에 가득하다는 이름처럼, 석양을 볼 수 있는 호수 가까이 자리 잡은 객잔이었다. 건물 1층 전면엔 거창한 로비나 체크인 카운터 대신 식당이 있었다. 식당 뒷문을 통해 객실 복도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방을 둘러보니 예상보다 더 허름했다. 다른 객잔을 좀 더 살펴보겠다고 말하고 다롄 부부를 떼어놓고 도망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객잔을 나서려는데 하필 허기가 밀려왔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은 터라, 마침 식당 입구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팬케이크 같은 것을 부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구워내는 모쒀바바(摩梭粑粑)라고 한다. 샛노란 빛깔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잠시 쉬었다 출발할 요량으로 모쒀바바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 때 등 뒤에서 들려온 아줌마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내 발길을 붙들었다.

“사장님이 모쒀인이래!”

중국 관광지에는 객지에서  한족이 경영하는 호텔과 식당이 많다. 루구후에 가기 전부터 가능하면 현지인 숙소에 묵으며 그곳 문화를 접하고 싶었던 나는 결국  객잔에 눌러앉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분에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버스에서 알게 된 따리엔에서 온 50대 부부(왼쪽), 옥수수가 들어가 고소하고 달콤한 모숴바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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