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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직 동물이다?

자기만의 공간의 필요성

by 열정적인 콤플렉스 Apr 11. 2025

시골 마을에서 대가족이 모여 먹고 자며 아옹다옹 행복하게 자랐다. 아들 귀한 집에 막내아들로 태어났고 장성한 형제자매들은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면서 '뒷방'을 혼자만의 공간으로 허락받아 지냈다. 그래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공간의 나뉨 없이 사춘기 시절을 무난히 보냈다. 중학교를 마치고 다른 도시로 유학(?)을 와서도 2명이 함께 쓰는 하숙생활을 했고 아침과 저녁이면 하숙생들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 밥을 먹고 비슷한 시간에 같은 학교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서 등교했다. 오로시 혼자만이 공간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다. 그렇게 침범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나도 모르게 경계라는 것이 굳어졌다.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면 동물들은 자신의 영역에 극도로 민감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능적으로 자신 혹은 자기들만의 영역을 가지고 지켜야만 한다. 단순히 땅과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먹이와 안전한 쉼터가 존재를 지켜주는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지키도록 DNA에 새겨지고 세대에 걸려 유전되면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배설물과 체액을 붙여 영역을 표시하고 접근하려는 자에게 사전에 경고를 보내는 것은 이런 DNA의 발현의 당연한 결과다. 



친함과 유대감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군가가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용인할 수 있는 시간과 범위가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갔으면 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정해놓은 생활의 질서와 배열을 깨트리면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자취방에 들어와 양발 집어던지고 몇 날 며칠을 죽치고 있는 녀석 중에도 그렇게 해도 편한 놈이 있는 반면에 얼른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놈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사무실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이 있었다 없어졌다는 반복 한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의 개인적 공간과 스트레스와 관련된 실험을 했다. 사무실 공간을 파티션을 없애고 개방된 공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병가 신청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고 상사의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스트레스와 우울증 지수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면 군대에 존재하던 구타와 얼차려도 좁은 공간에 장성한 성인들을 다닥다닥 집어넣어서 생활하게 하니 생기는 자연스러운(?) 갈등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도소에서도 보이는 현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사랑해서, 같이 살아도 좋을 만큼 사랑해서, 집에 들여보내는 게 싫어져서 결혼이라는 법적 장치를 통해 한집에서 살기로 약속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경계에 대한 인식, 경계 침범에 대한 설명하기 힘든 어색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일에 필요한 준비를 하기 위해 만든 '나만의 방'에 한동안 들어가 있곤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 이유는 일 준비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투철한 직업의식보다는 경계가 더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 같다. 너무 오래 같이 살아 얼마나 경계인식이 지속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한테는 분명히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운동화 바닥에 붙은 껌딱지처럼 지내지만..



사람도 여전히 공간과 경계가 필요한 '동물의 본성'에 충실한 존재다. 타인과, 지인과, 친한 친구와, 연인과 갖는 '거리의 차이'를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와 친해질 때는 그 공간을 좁혀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상대가 느끼는 그 미묘한 거리감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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