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모스크바 3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지금이야 서울에서 1년쯤 지냈다고 꽤 익숙해진 것 같다고 혼자서 으스대곤 하지만, 일평생 서울을 한 번 가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거리에서 살아온 나는 KTX 창문 밖으로 63 빌딩이 보일 때쯤이면 왠지 막막해질 때가 있다. 대한민국의 절반이 살아가는 이 도시는 너무 크고 거대해서 볼 것도, 할 것도 너무 많고, 그래서 사람도 너무 많으니까. 스물, 스물하나의 난 부산행 밤기차에서 왠지 모를 아쉬움을 안고 또 한 번의 서울을 매듭짓곤 했다. 나름대로 알찬 일정으로 다녀왔고, 실상은 서울을 딱히 동경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걸까. 무슨 외국도 아니고, 올 일이야 얼마든지 있는데 어린 날의 나에게 서울은 그런 도시였다.
그래서 오히려 모스크바 여행 일정을 짤 때는 최대한 힘을 빼고 싶었다. 무려 871번째 생일을 맞이한 유럽 최대의 도시, 서울의 4배 면적에 1,270만 명이 살아가는 그 도시를 4일 만에 이해하려는 건 욕심이 분명하니까. ‘모스크바 여ㅎ’라고만 쳐도 온갖 화려한 후기들이 쏟아져 나와서 꽤나 주눅 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돌아가는 게 맞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공자라면 분명 또 오게 될 테니(실제로 그랬다) 욕심내지 말 것. 본전 생각을 버리고, 할 일 없는 모스코비치*처럼 돌아다녀 볼 것. 그렇게 나만의 모스크바 여행을 꿈꿨다.
* 모스코비치 : 파리의 '파리지앵'처럼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
최대한 대충 짜겠다는 각오로 엑셀 파일을 열고 붉은 광장이라는 네 글자를 매일 밤마다 입력했다. 참새 언덕이나 신시가지 등 모스크바에 야경 끝내주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지만, 왠지 붉은 광장은 하루라도 안 보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러시아의 상징 같은 공간이니까, 광화문 광장을 전 일정에 넣은 외국인 관광객도 있지 않겠냐는 핑계를 떠올려 보았던 것 같다. 나 혼자 가는 나만의 여행이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대상이 없는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일단 이렇게 적고 상황 봐서 바꾸자고 대충 넘겼는데, 그런 일이 없었던 걸 보면 어지간히 좋았던 것 같다. 내 여행이니, 나한테만 만족스러우면 성공이었다.
모스크바의 두 번째 날엔 붉은 광장의 오른편에 보이는 그 붉은 성벽, 크레믈 안으로 들어갔다. 크레믈이야 성벽을 뜻하는 일반 명사인 만큼 러시아 전역에서 볼 수 있지만(이 여행기에도 여러 번 등장), 첫 글자가 대문자로 표기되어 있다면 모스크바 크레믈을 뜻한다. 소련 시절엔 공산당의 본부가 있었고, 냉전 시절엔 백악관과 정치적인 대립을 이루었으며, 지금은 무려 푸틴이 출퇴근을 하고 있는. 이 모든 역사, 후술 할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한. 하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겐 ‘몇 시간을 줄을 섰다더라’ 하는 무서운 후기들만 가득한.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나 역시도 한 여름 아침 땡볕에 얌전히 서서 1시간가량을 서 있다가 2만 원 남짓한 티켓들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대통령 관저가 있는 장소인 만큼 보안이 삼엄했다. 짐 검사는 물론이고 공항에서나 볼 법한 X레이 검색대도 통과해야 했다. 물론 나는 전혀 의심스럽지 않게 생긴 작고 마른 학생이었으니 빠르게 통과될 수 있었다. 크레믈 내부에는 박물관이나 종교 건물뿐만 아니라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보안 경비 구역이 다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 동선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인솔을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관광객이 없어 보이는 곳은 그 이유가 있는 듯 그 근처로 가던 사람들이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크레믈에서 가장 특이했던 건 한 박물관의 이름이었다. 무기고(Armoury Chamber). 가이드북에 적힌 성당 지구(Cathedral complex)와 다이아몬드 박물관(Diamond Fund)까지도 꽤나 직설적인 네이밍을 갖고 있었던 덕에 직관적으로 비교되어서 괜히 더 특별해 보였다. 처음엔 이름만 보고 일평생 군사지식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시원하게 넘기려 했는데, 어느 후기를 봐도 극찬이 자자했다. 알고 보니 무기가 아니라 러시아 황실의 보물을 싹 모아 놓은 박물관이었던 것(직접 확인해보니 2개 방 정도는 무기가 전시되어 있기는 했음). 이럴 거면 왜 굳이 무기고라는 이름을 지은 걸까?
대체 얼마나 대단하겠냐며 괜한 심술을 괜히 가지고 무기고로 직행한 나는 거의 6시간을 넘게 나오지 못했다. 사진 촬영이 아주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녔더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여길 나중에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오래 했었는데 딱 게임에서 ‘그럼 아끼는 보물 중에서 하날 골라봐라’하며 보여주는 어려운 퀘스트 보상 아이템 같았다. 그만큼 엄청 화려했고, 심지어 하나하나마다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복학 후 ‘러시아 역사’ 과목을 수강하며 ‘이거 무기고에서 본 거잖아?’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 이제 성당지구도 구경하면 되겠다고 하며 나왔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려오시며 ‘크레믈 닫았어(Кремль закрыт)’하면서 껄껄 웃으셨다. 결국 난 700 루블짜리 성당지구 입장권을 기념품으로만 가져야 했다.
일정 전체가 모스크바의 날 축제와 정확히 겹쳐 있었던 덕에 문학 박물관 투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여행 제목이 노문과 자퇴 어쩌고이기 때문에 웬 문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자퇴를 결정하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테마였다. ‘노어’ 전공이 아닌 ‘노어노문’ 전공으로서, 실제로 문학사 학위를 받게 될 운명인 만큼 내가 문학을 계속 좋아할 자신이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 작품도 꽤나 읽어본 네 작가들의 박물관*을 일정에 넣었고, 무엇을 보며 무슨 생각으로 펜을 쥐었는지 느껴보고 싶어 생가를 위주로 둘러보았다.
* 도스토옙스키(죄와 벌···), 톨스토이(전쟁과 평화···), 푸시킨(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고골(코···)
그래서 좋아할 자신이 생겼냐면 그건 잘 모르겠다. 갑자기 그 긴 러시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짧게 느껴지거나, 장편이 단편처럼 호로록 읽힐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게 되더라도 많은 문학 전공자들이 그러하듯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이 나라에서만큼은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모스크바의 날 덕에 대부분의 문학 박물관들이 무료로 개방되었을 때, ‘나야 관광객이니 표 값이 굳어서 좋은데, 이런 델 누가 올까?’하던 날 비웃기라도 하듯 현지인들은 박물관 밖 도로에까지 줄을 서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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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박 34일,
11개의 도시와 바이칼호수까지!
10,000Km를 넘게 달렸던
2018년 스물셋 여름날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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