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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꿈꾸다

내가 바라는 세상

by 샨띠정

얼마 전에 한 친구로부터 연락을 차단당했다. 12월 3일에 있었던 갑작스러운 계엄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순간 격분했다. 미처 나는 서로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 채 무심코 한 마디 던진 게 화근이 되었다. 그녀의 의견에 나는 '아이고~'라고 화답했던 것이다. 그 사소한 한 마디가 불러온 파장은 컸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현실과 마주했다. 더 이상 나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는 바로 나를 차단했고, 나와 함께 있던 단톡방에서도 나를 비난하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가슴이 쿵쾅거리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소리 없이 가슴을 움켜쥐고 울었다. 이런 상황을 그 누구와도 나눌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얘기했더니 요즘 세상이 그렇게 되었단다. 남편은 나더러 순진하다고 하며, 나를 위로하는 것 같으면서도 핀잔을 보내왔다.


나는 가슴을 찢었다. 우리의 관계가 한낱 종이조각 같은 얇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단 말인가? 그토록 애틋하고 다정했던 마음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건지 마음이 아파 울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명확한 선을 긋는 일에 익숙해져 왔다. 특히 지역감정으로 인한 양분화는 오랜 역사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 차이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정치적인 견해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지역감정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경상도 말씨를 쓰는 할머니와 아버지, 작은 아빠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셔야 만 했다. 말의 억양과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쩌면 나는 그런 나의 성장기를 통해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하고 배척하지 않는 간접 훈련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은연중에 편 가르기식의 패턴을 거스르고 싶어 했다. 자연스레 서로 다른 빛깔의 사람들이 어울려 또 다른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길 기대하면서.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경상도 말씨로 전라도에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그 반대로도 눈치 보지 않고 즐겁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영국에서 지낼 때 그곳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 있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정치와 종교 얘기는 서로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서양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보며, 정치와 종교가 보통 예민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포용하고 귀를 열어 들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이 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과욕이라 해야 할까?


심히 처참하게 최고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제 뉴스를 보고 싶은 마음까지도 닫고 싶은 심정이다.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그냥 그렇게 머물고 싶다는 욕구가 차오른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었던 삼국시대가 떠오른다. 그 시대를 비록 살아보지 못했지만, 현재의 내가 마치 삼국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느낌은 무엇일까? 가슴이 미어진다. 우리는 서로가 적도 아니고 원수도 아니지 않은가? 같은 민족이자 부모, 형제, 자매, 이웃이 아닌가?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고 있을까?


변화를 보고 싶다. 사과와 화해, 수용과 배려가 있으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존중하는 세상을 꿈꾼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되 폭력과 싸움을 버리고, 개인의 이익에 연연하기보다는 더 큰 것에 주목하여 바라보며, 작은 것을 내려놓는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어느 누구도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텐데. 각자 사랑하는 방식이 이리도 다를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영영 이렇듯 두 개로 갈라져 양분화된 채로 살아야 하는지 두렵다.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대적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암울한가?


부디 나는 세상이 달라지길 바란다.

사자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치는 성경 속의 세상처럼.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노는 그런 세상.


서로가 달라도 물고 뜯지 않고, 함께 손잡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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