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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Oct 14. 2020

오래된 가을


어느 시인이 그랬다

가을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계절이라고.

그 시인을 모르는 내 할아버지는

마당을 국화로 가득 채우고

모자라 한 생명마저 꽃처럼 피어나길 바랐다.

나를 눈에 넣고 시들지 않기를 소원했다.


오래된 가을날

연장을 이고 막일을 가면서

허공에 못 질을 하고 일당을 받으면

내게 주겠노라 자신의 검지를 내밀었다.

다섯 손가락 다 펼쳐 잡아도

내 할아버지 검지는 정말 크고 단단했다.


짧아진 해를 등지고

어둠이 철문을 밀고 들어오면

내 할아버지가 먼지를 털어내며 나를 불렀다.

우물가에서 새카만 손을 씻고

더 단단해진 손으로 부스럭거리는데

그날은 박하사탕 두 개가 일당의 전부였다.

막일을 다녔지만 꽃을 사랑했던

내 할아버지의 두 눈과 박하사탕이 나를 키웠다.

_


그런데 시월 이일에 알았다

내 할아버지 눈이 사막이라는 것을.

올해 심은 국화는 폭우에 떠내려가고

윤기라곤 없는 주름만 가득한 손으로

나를 만지고 만지는데 정작 시드는 건 내 할아버지.


내 할아버지는 아직도 그 시인을 모른다

그런데 올해는 그 시인처럼 가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어느 계절에도 지지 않는데

액체라곤 없을 것 같은 몸에서 눈물을 쏟는다

나를 넣었던 두 눈으로 약속은 잊은 채로.


이제 나는 안다

내 할아버지가 죽으면

그렇게 좋아하던 국화를 국화가 놓는 셈이 되는 걸.

어느 계절에 할아버지가 죽더라도

나는 오래도록 화환이 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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