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블루밍 Sep 23. 2021

10 to 2, 고독 재생 시간

진정한 이너뷰티


피부 재생 시간은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라고 한다. 이 시간에 잠을 자야 재생이 이루어져 피부 장벽이 강화된다. 나이가 어릴수록 재생 속도는 당연히 더 빠르다. 이걸 알면서도 제시간에 자는 게 요즘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아는 대로만 행동하면 인생이 참 쉬울 것 같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 사이, 간혹 나는 피부 대신 고독을 선택한다. 다른 사람들이 늦어서 연락하기를 꺼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내면세계에 몰입하기 좋다. 방해 요인 없이 자신의 내면으들어가면 진정한 고독의 가치를 맛볼 수 있다. 열 시가 되면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의도치 않게 나의 장기가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일단 무음으로 바꾼다. 방문을 살짝 닫아준다. 멍하니 생각을 가득 하고 싶을 땐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면 된다. 그러다가 그 순간의 마음 혹은 생각을 기록하고 싶어지면 노트북을 열어 타이핑을 시작한다. 타닥타닥. 고요한 세상 속 내 마음이 글로 남겨지는 소리만큼 경쾌한 음악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이 휘발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다. 내가 유명한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이에 의해서 기록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해야 한다. 나는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에 철없는 시절의 생각일지라도 남기고 싶었다. 아무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말이다. 적어도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싶을 테니까. 기억력이 좋지 않아 청순한 뇌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절실했다. 시한부 글짓기를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으며, 홀로 고독에 빠져 있을 때만큼 덜 외로운 때도 없다.

- 한병철, <피로사회>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에게 '왜 가만히 있냐. 그 시간에 뭐라도 생산적인 걸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묻는다면 '멍하니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라고 답할 수 있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하는 때는 없다는 저자의 말이 뇌리에 꽂혔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는 이름 그대로 경주가 전부다. 태어나서 하는 일이 경주뿐이기에 주변에 한눈팔면 안 된다. (인간이 정한 목적이기는 하지만) 경주라는 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경주마인가? 우리가 어떤 한 가지 목표만을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면, 주변을 돌아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자신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생각이라는 행위를 의식적으로 계속해야 한다. 생각을 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 중 하나는 '고독'임에 틀림없다.    

  

인간관계를 다 끊고 고독하게만 살라는 게 아니다. 고독이 내 인생의 일부분을 차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이 시간들 속에 고독을 조금씩 넣어두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피부에 수분을 보충해주는 알로에처럼 고독도 미끄덩한 매력이 있다. (고독의 매끈함은 '효과 좋은 고독 레인지' 글에서 확인 가능하다.) 피부를 재생시켜주는 세포가 열심히 일을 하는 시간, 밤 열 시부터 두시 사이. 그 시간은 고독을 통해 생각의 새 살이 돋기 좋은 때이기도 하다. 고독을 포기할지언정 피부를 사수해야겠다면, 다른 시간에도 당연히 고독 재생이 가능하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그저 고독한 시간을 통해 당신의 마음에, 생각에 뽀얀 새살이 돋아나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지금 홀로 있어서 외롭고 슬픈 생각이 든다면, 그래서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 온갖 소음 속에 자신을 던지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에게 찾아온 황금 같은 시간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것과 같다.

- 장 자크 루소




# 관련 글

https://brunch.co.kr/@1236jsy/46

https://brunch.co.kr/@1236jsy/8



이전 10화 효과 좋은 고독레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