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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Oct 02. 2021

나이듦에 대하여

화가 많아져도 괜찮은 걸까


얼마 전 친구들이랑 메신저로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만 이런가? 나이 들수록 오히려 인내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 특히 운전할 때. 왜 이렇게 화가 잘 나냐. 이래도 되는 거 맞나. 문득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싶더라고. 나와는 달리 항상 스마일인 밝디 밝은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조금 신기했다. 이내 나는 대답했다. 이상한 거 절대 아님. 나도 그래. 화가 쉽게 나. 오히려 참으면 병 된다. 적당히 표출하고 살아야 돼. 비상식적인 상황에 놓이면 그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 요즘은 너무 만만하게 행동하면 진짜 만만이로 보는 세상이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한 친구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내 밑으로 들어오는 후배가 불쌍해. 나 같은 선배를 만나다니. 이렇게 기복이 심할 수가 없어. 누구보다 평온한 성격에, 오히려 감정을 너무 참는 편이라 그걸 뚫어줄 구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하다니. 놀라웠다. 우리가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시절보다 좀 더 잦은 대화와 만남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야기의 결론은 옛날보다 화를 자주 내는 자신을 이해해주자는 거였다.


그렇다. 10대에 만나 30대를 반년 앞둔 우리는 화가 많아졌다. 변명의 여지없이 인정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궁금했다. 스테이블한 성격에 평화주의자였던 우리가 어쩌다 분노와 친해진 건지 말이다. 우선 십 년의 세월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학생 때는 나보다 다른 친구들의 마음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나의 호불호를 찾아서 집중하기보다는, 주변에서 좋다고 하면 우르르 좋아하고 싫다고 하면 나도 같이 싫어했다. 줏대 없는 10대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남보다는 '나'의 목소리를 먼저 들으려고 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무슨 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듣기 위해 집중한다. 막대한 자유와 선택이 주어지는 어른의 무게감을 견디려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날 것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착한 척하는 내 가짜 마음 말고 진짜 마음을 듣게 된다. 가끔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실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일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못된 생각, 그릇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닫고 나아가면 된다. 그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위험한 길에 빠지기 쉽다.


~ 이런 노인들과 교제하다 보면 모든 인간에게 염증을 느끼게 돼요. 팔십 세가 돼서까지 악의를 품고 있고, 고집불통이며, 시기하고, 이기적이며, 끝없이 탐욕스럽다면 인생이란 뭐죠? 나는 나이가 들면 좋아지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늙는 것에 대해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내가 그렇게 된다면? 그러면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가요?

-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성인군자가 되는 건 아닐 거다. 그건 동화 속 엔딩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현실 속 나이듦의 부끄러운 모습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예외는 없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나잇값을 해야지. 저 나이 먹도록 뭐하고 산거야.라는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은 노인이 될 자신이 없다면 치열하게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깨달음을 거듭해야 한다. 그런 태도가 습관이 되면, 나이를 먹는 만큼 생각의 깊이도 자연스럽게 깊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날 것의 자신을 아는 은 중요하다. 진짜 내 마음이 원하는 게 A, B, C 중에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A인지 A'인지 A''인지도. 실제로는 A라고 생각하면서 B인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속이면, 그 눈덩이는 구르고 구르다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결과물을 안은 채 터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이 화가 난다고 이야기하면 그 목소리를 잠자코 들어주. 무슨 일인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감정이 다독여질지. 다른 사람들도 각자 마음의 소리를 듣느라 바쁠 테니,  마음은 내가 제일 먼저 알아줘야 한다. 오늘 당신의 마음은 당신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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