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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Sep 09. 2021

하룻밤 자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만고불변의 법칙


지난밤 동생이랑 말씨름을 했다. 자매 사이에 다투는 게 뭔 대수냐 싶지만, 평소 치고는 꽤나 거세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삼 남매의 성향은 제각기 다르지만, 굳이 따지자면 여동생보다는 남동생이 나와 비슷한 게 더 많다. 우리 셋은 '먹으면 바로 치우는 사람 vs 먹고 쉬다가 치우는 사람'으로 나뉘고, '내향적인 사람 vs 외향적인 사람'으로 분류되며, '가치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 vs 가치 소비에 관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엄마 말에 일단 공감하고 보는 사람 vs 엄마 말 중 아닌 건 바로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사람' 등으로 갈린다. 그날 다툼의 시작은 마지막 때문이었다.  

  

여동생은 재택근무 기간인 2주 동안 본가에 올라와 지냈다. 본가는 평범한 30평대 방 3의 구조다. 문제는 그 집에 다 큰 어른이 다섯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해 집에서 네 명이 지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에는 여동생이 타지 생활을 시작해 이때도 네 명이 집에서 생활했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고, 타지 생활을 하는 여동생은 강아지도 보고 집밥도 먹을 겸 집에 자주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안방은 아빠와 엄마가, 남동생방은 남동생 혼자, 그리고 내(?) 방은 여동생과 함께 썼다. 가뜩이나 나는 키도 커서(171cm) 방이 꽉 차는데, 동생도 작은 키는 아니라(165cm) 우리 방은 비좁았다. 음, 옹기종기 모여자기에는 좋았다.


홀로 신축 사택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지내는 여동생의 답답함과 불편함은 재택근무를 하면서 쌓이기 시작했다. 특히, 고집이 센 엄마와 그걸 바꿔주고 싶어 하는 여동생은 사소한 일로 자주 부딪혔다. 덕분에 우리 집은 시끄러웠다. 그날도 엄마랑 여동생이 다투었고, 내가 어쩌다 물으니 그때 집에 있었던 남동생이 설명을 해주었다. '엄마도 사람인데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 그냥 넘어가는 게 좋지 않냐.'는게 남동생과 나의 입장이었고, 반복되는 상황에 지친 나는 여동생에게 다다다 쏘아붙였다. 언니는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는지 배신감을 느낀 동생도 태세 전환을 해 강하게 반격했다. '대체 이 집에 내 공간이 조금도 없는 거냐. 너무하지 않냐.' 여동생도 나름대로 억울한 게 많았나 보더라.


결국 그 밤의 끝은 '가족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말한 대로 지켜라.', '그래, 이 날 뭐 때문에 오는 것 말고는 한동안 올라오지 않겠다. 잘 지내라.'였다. 오랜만에 뇌를 시리게 하는 것 같은 차가움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 자려고 하니 잠이  턱이 있나. 속이 답답했다. 갑자기 내가 잘못한 부분들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여동생은 내가 새벽까지 불을 켜고 있을 때도 본인은 상관없다며 쿨쿨 잘 자는 착한 아이다. 반면, 나는 잠귀도 밝고 (라섹 때문인지) 빛에 민감한 편이라 동생이 그러면 투덜댄다.. 동생이랑 싸우고 나니 미안하고 고마운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밤이었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다음날 새벽에 내가 먼저 메신저를 보냈다. '어제는 감정이 좀 격했던 것 같아. 남동생 이야기만 듣고 네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어림짐작한 거 미안해. 블라블라..' 장문 메시지가 특기인 나는 몇 번의 검토 끝에 동생에게 전송했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니 속이 후련했다. 정말 미안했던 거다. 동생이 답장도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사과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평소에 동생 생일선물로 딱이라고 생각한 귀걸이가 있었는데, 과감하게 질렀다. 핑크 쿼츠 색이 동생 얼굴톤에 찰떡일 것 같아서 계속 째려보던 거였다. 동생 생일은 몇 달이나 남았지만 어차피 쓸 거 미리 착용하는 게 낫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사과의 당도를 높였다.


몇 시간 후 늦잠을 자고 일어난 동생에게 답장이 왔다. '나도 어제 연 끊을 것 마냥 이야기해서 미안했어. 자고 일어나니 감정도 잦아들면서 내가 왜 그랬지 싶더라고.. 아, 그리고 선물은 뭐야. 너무 예쁘다. 땡큐 땡큐.' 고마웠다. 언니가 못난 모습을 보일 때 덮어줄 줄도 알고. 이러고 퇴근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밥이랑 반찬 세팅을 부탁했는데 (통근 편도 1시간 30분이다), 동생이 싹 차려놨다. 감동이었다. 완벽한 화해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말인데 이렇게 커서도 여전히 이 말이 쓰일 줄이야. 만고불변의 진리란 이런 걸까. 머릿속이 엉켜 몸과 마음이 불편한 날이라면 일단 잠을 청해보자. 하룻밤 지나면 생각보다 괜찮아질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잔다고 해도 일단 잠이 들면 누구나 혼자다. 확실한 해답이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하룻밤 자고 나서 생각해보라'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다음 날로 미룬 채 잠자리에 들어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아침에 잠을 깨면, 해답이 너무 명확해서 왜 전날 밤에는 그 생각을 못 했는지 의아할 때가 많이 있다. 말하자면 문제를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재정비하는 과정이 자는 동안 진행된 것이다.

- 앤서니 스토, <고독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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