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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Aug 31. 2021

울다 웃으면서 우린 어른이 된다

주룩주룩 내리는 가을비를 보며


친척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앞에 두고 허허 웃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부고 소식에 반차를 쓰고 달려온 내 눈물을 안쓰럽게 보던 아빠였는데. 눈으로 위로를 건네는 아빠의 얼굴에도 수척함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웃고 계셨다.


당신은 애써 웃고 있었다.


장례식장 예절을 검색했던 어린 내가 그리울 만큼, 어느새 장례식장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는 아빠의 웃음도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조사가 있으니 얼굴들 보게 되네요. 참 사는 게 그래요.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이모부의 말도 지금에서야 또렷하게 들린다.


할아버지가 심장 수술을 받으시고 의식을 겨우 회복하셨던 작년 이맘때쯤의 병원 내 공기도 그랬다. 웃음과 울음이 이상하리만큼 조화롭게 병존했다. 가능성이 희박했던 수술을 다행히 잘 마치고 돌아오셨기에, 모두들 활짝 미소 지은 채로 할아버지를 맞이했다. 볼이 움푹 파이고 깡마른 할아버지의 모습에 어느 누구도 소리 내 울 수 없었다.


우리는 슬픔을 발 밑에 숨기고 애써 웃어 보였다.  


"혹시라도 나중에 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이 슬플 때는 억지로라도 웃으며 눈을 감으면 돼. 똑같이 몇 번이고 해 보면 돼." 처음에는 마음과 몸의 균형이 어긋나서 좀처럼 웃어지질 않았다. 얼굴은 웃지만 마음은 슬픔에 사로잡혀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몇 번이고 시도하니 무언가 바뀌었다. 억지로 웃는 얼굴로 눈을 감은 내 마음은 왜 그런지 평온했고, 이제 검은 소용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암흑 속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듯 부드러운 크림색 햇살이 퍼져나갔다. 그 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은 차츰 따뜻해지고, 온화한 기분에 휩싸여갔다.

- 가와무라 겐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친분이 별로 두텁지 않은 회사 동료 결혼식에서도 종종 눈물을 흘리곤 했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포옹을 할 때, 내 가족을 어디론가 떠나보내는 것처럼 슬퍼했다. 감격스럽기도 했고. 신부의 오랜 친구가 애정 어린 축사를 할 때, 목소리에서 자그맣게 느껴지는 떨림과 묵직한 감정에도 눈물이 났다. 다행히 엉엉 울지는 않았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을 손으로 잽싸게 훔쳐내는 정도였다. 유난인 듯싶기도 했지만, 타인의 감정을 투명하게 느끼는 섬세함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눈물을 흘린 지 오래된 것 같을 . 메마른 눈을 촉촉하게 적시고 싶을 때. 일부러 슬픈 작품을 찾아본다. 눈에 한바탕 물을 공급해주고 나면 후련하다.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라는 목적성은 어느샌가 잊히고 슬픈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마음은 아프지만 웃으면서 보낼 수 있는 스토리를 선호한다.


감정이 유익한 신경 화학 물질과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기도 한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이 진정되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이 몸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 마크 브래킷, <감정의 발견>


스트레스 호르몬을 밖으로 배출하는 방법이 눈물이었다니. 울고 나서 후련한 이유가 이거였나 보다. 눈물을 흘리면 눈에 산소도 공급된다고 한다. 우리가 애써 참으려고 하는 눈물이 사실은 주룩주룩 흘려야 건강에 좋은 거였구나. 가을비가 내리는 밤. 울다 웃는 어른의 얼굴을 자세히 그려본다.



인생이란, 본래 슬픈 것과 우스운 것이 섞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숙명적으로 엄숙한 것이다.

- 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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