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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한장이야기 May 24. 2022

강수연, 월드스타로 불린 첫 배우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

영화 "씨받이"속 강수연의 모습 (iPad air 4, Adobe Fresco)

2022년 5월 대한민국의 여배우 한 명이 세상을 떠납니다. “강 수 연”. 그녀가 스타덤에 오르던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배우로서 그녀에 대한 기억은 놀랍게도 제 안에 별로 없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은 영화 “씨받이”로 1987년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아시아 배우로서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국민 배우로 우뚝 서는 장면입니다. 정작 영화 “씨받이”는 어린 제가 볼 수 없는 등급의 성인 영화였습니다. 물론 거장 “임권택”감독의 영화이고 표현의 수위가 높다고 해도 명작의 반열에 들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저의 나이가 수용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영화였다는 것이죠. 베니스 영화제의 수상 직후 지상파 TV에서 특별 방영을 해준 것으로 기억나는데 부모님과 보는 그 자리가 바늘방석 같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강수연”이란 배우를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영화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가 더 적절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

강수연, 월드스타로 불린 첫 배우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박중훈과 강수연 (iPad air 4, Adobe Fresco)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는 코믹한 청춘물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특히 고 이규형 감독이 그 당시 웬만한 배우들보다 더 인기가 있었는데 그분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이죠. 배우 “박중훈”의 풋풋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기에 비해서는 작품성이 훌륭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시절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로 공감을 이끌어냈었습니다. 배우 강수연은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 캐스팅된 것이 너무도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의 저는 이 영화도 못 봤던 것 같네요. 시간이 지난 후 어디선가 본 희미한 기억입니다.


배우 강수연은 어린 나이에 파격적인 성인 연기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것은 이후 어쩔 수 없는 족쇄로 작용하게 됩니다. 가볍고 자기 나이에 맞는 즐거운 청춘 물들을 좀 더 제대로 연기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입니다. 영화 씨받이로 시작된 그녀의 전성기 출연작들을 보자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감자”

“도화”

“연산군”

“업”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등

씨받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 후로도 그녀는 기대가 많이 되었던 화제작에 많이 출연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배우라는 압박감이 크게 작용하는 듯 보였습니다. 어쩌면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부터 그녀는 힘을 빼고 마음껏 즐기는 진짜 연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메릴 스트립”이 인생의 후반부에 즐거운 연기를 쏟아내고 있고, 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으로 연기 경력 후반부를 자신의 최 전성기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강수연 배우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더욱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지금의 세대들은 그녀의 입지와 자리가 얼마나 견고했었는지 모를 겁니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대한민국 대표 배우가 되었지만 견디기 힘든 그 자리의 무게를 조용히 견뎌냈던 한 배우의 마지막을 회고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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