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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Jun 22. 2024

불행이 머물자 여행이 시작되었다


불행은 늘 불현듯 찾아왔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소견이 발견이 되어 상급 병원 재검사가 필요합니다'

몇 자 되지 않는 문장이 마음을 요란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멀쩡한 나보고 암 일지도 모르는 세포가 있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의사는 가능성이 있는 거지 암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과 아닐 수도 있다는 말. 어느 말에 장단을 맞춰야 할까. 일주일 뒤 유방에서 떼어낸 세포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 병명은 비정형 상피세포 증식증이었다. 유방암 전단계 진단을 받았다. 위험한 세포라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집성미세석회화 조직검사도 해야 했다. 암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으로 위로를 했다. 


수술은 두 곳을 절개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자국이 남을 수 있다는 말도 남겼다. 비키니를 입을 것도 아니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에서 흉터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두 발로 수술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수술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스크와 수술복을 입은 사람들이 침대 주위를 빙그레 둘러쌌다. 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마취약이 투약되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수술은 끝이 났다.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갔다. 2인실 병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1인실 같은 2인실을 사용했다. 밥때가 되니 방으로 밥이 배달되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 붕대 때문인지 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가까스로 밥을 먹고  진통제를 먹었다. 마취가 풀릴수록 통증은 심해졌다. 침을 꼴깍 넘길 때마다 가슴 통증이 느껴졌다. 침을 넘기지 말아야지 생각하니 입에 침이 더 고이는 것 같았다. 불편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담당 의사 선생님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수술은 잘 됐어요.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가슴 한쪽이 푹 꺼질 수도 있어요. 추가로 조직검사를 보냈고 일주일 뒤 결과는 나올 거예요. 어디 불편한 되는 없어요?"

"가슴 통증이 심하네요. 잠을 잘 수가 없을 만큼요."

"진통제 하나 넣어 드릴게요."

그날 밤 진통제로 가까스로 통증을 버터 냈다. 퇴원 수속을 하고 보험회사에 제출할 서류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 유월의 날씨는 텁텁했다. 압박붕대 사이로 땀이 고였다. 버스가 덜컹 될 때마다 통증이 찾아왔다. 우울한 날씨에 우울한 기분이 포개졌다. 떠나고 싶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 여행 갈까"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어디로"

"태국 파타야 어때?"

"좋지. 그런데 너 몸은 괜찮아?"

"괜찮아. 통증이 심한 거 말고는. 수술은 잘 됐대. 추가 조직검사 결과만 이상 없음 나오면 떠나자."

"짠순이가 웬일이야? 여행을 다 가자고 하고. 언제 갈 건데?"

"이제 알아봐야지. 괜찮은 여행 상품 찾으면 알려줄게. 시간 맞춰봐."


남편 말대로 지출에 민감한 난 짠순이다. 허투루 돈 쓰는 일을 제일 불편해하는 인간이다. 그랬던 내가 해외여행을 생각했다는 건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불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다. 한 번의 불행은 다음의 불행을 달고 오는 것이 문제다. 엄마의 암 수술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수술날짜가 잡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남편 말고는. 엄마는 폐암 1기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건강을 회복 중이다. 그런 와중에 나의 유방암 가능성을 말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으니까. 불행은 불현듯 찾아왔다 오랜 시간 머문다.  불행이 떠날 수 없다면 내가 떠나는 쪽을 선택해야 했다. 현실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훌훌 떠나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태국 파타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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