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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감정의 맛 19화

적당히 맛있는 인생

열정

by 새나

볶음밥은 센 불에 볶아야 맛있다. 그것이 볶음밥의 원칙이자 진리였다. 중국집에서 먹는 볶음밥에는 독특한 불향이 배어 있다. 밥알 하나하나에 스며든 강렬한 화력의 흔적.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늘 볶음밥을 선택했던 나는 그 불향을 혀끝에 느끼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곤 했다.


볶음밥에는 대개 짜장 소스와 짬뽕 국물이 따라왔다. 그것이 없다고 해서 볶음밥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볶음밥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아무리 볶음밥을 만들어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밥을 센 불에 볶아도 간을 맞춰도 결과물은 어디까지나 집에서 만든 볶음밥일 뿐이었다.


"불의 차이야"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집에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강렬한 화구. 중국집 주방의 거센 불길이 있어야만 완성되는 맛. 주인장의 열정이 깃든 맛 그것이 내가 만든 볶음밥과 중국집의 볶음밥과의 간격이었다.


그 불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열정을 태우는 사람들. 피곤함도, 번아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그들은 포기라는 단어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간다. 언제나 계획이 있고,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망설임 없이 전진한다. 나는 그럼 사람들을 동경했다.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나는 왜 그들처럼 살지 못할까.


나도 그들처럼 열정을 태운적이 있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부동산 재테크를 시작했을 때. 뭐든 될 것만 같았다. 열심히 하면 안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다. 앞만 보고 달렸다. 임장을 다니고, 경매를 공부하고 종잣돈을 모으며 미래의 나를 위해 하루하루를 쏟아부었다.


그때의 나는 센 불에 볶이는 볶음밥 같았다. 빠르게 움직이고, 뜨겁게 끓어오르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쉼 없이 휘저어졌다. 하지만 인생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열정이 강렬할수록 그것을 받쳐줄 단단한 마음이 필요했다. 단단한 마음 없이 태운 열정은 결국 내 몸을 갉아먹는 존재가 되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제야 깨달았다. 적당한 열정이 맛있는 볶음밥을 만든다는 것을. 도가 지나친 열정은 탄 맛이 나는 볶음밥을 만든다는 것을. 한 순간의 실수로 불 조절을 잘못하면 볶음밥은 타들어가며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열정을 불태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다. 불 조절을 잘해야 한다. 센 불이 필요할 때가 있고, 은근한 불로 천천히 익혀야 할 때가 있다. 그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볶음밥도, 인생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뜨겁게만 불타오르지 않게 불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필요할 때는 뜨겁게. 그러나 너무 오래 태우지는 않게. 그렇게 적당한 불길로, 고슬고슬한 맛있는 볶음밥이 완성되어 가듯. 나의 인생도 적당히 맛있는 인생이 되어가기를 바라 본다.


지금의 난, 중국집 볶음밥을 애써 따라 하지 않는다. 나만의 화력으로 나만의 볶음밥에 만족할 수 있는 맛을 찾고 있다. 익숙한 그 맛이 꼭 정답은 아닐 거다. 뭐든 나 다움이 있을 때 제일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다. 열정도 그렇다. 너무 불태우다 재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르니.

적당히.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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