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패밀리레스토랑에 갔다. 솔직히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다. 스테이크나 파스타보다는 김치찌개, 된장국 같은 익숙한 음식이 좋다. 하지만 가끔은 특별한 날, 특별한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찾게 되는 곳이 패밀리레스토랑이다.
기사식당이 있던 자리에 패밀리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주차장에 차가 가득했다. 맛있는 곳일까. 아이도 가고 싶은 눈치였다.
"엄마, 우리도 저기 한번 가보자."
"그래, 다음에 가자"
매번 다음을 기약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이는 가자고 말했고 나는 다음에를 말했다. 그렇게 다음을 기약한 것이 몇 번이었을까. 갈까 말까 망설이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패밀리레스토랑 간판도 익숙해졌다. 더 이상 이유를 찾지 못한 어느 날, 우리는 그곳에 갔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북적이는 소리에 긴장감이 밀려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신이 난 표정이었고 어른들은 메뉴판을 보며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르고 있었다. 나는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스테이크, 파스타, 샐러드 여러 종류의 사이드 메뉴들.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 앞에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사이. 아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메뉴판을 보며 먹고 싶은 것을 빠르게 선택했고, 직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기도 하고, 셀프바에서 물과 소스를 가져오기도 했다. 처음 와본 식당에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가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주문을 할 때도, 셀프바에서 물을 가지러 갈 때도, 혹시 실수하면 어쩌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먼저 들었다. 언제부터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사람이 되었던 걸까.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과 비교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어른이 되면서 실수를 두려워했고, 새로운 환경이 어색하고, 주변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였다. 지킬 것이 많아서 그랬던 같다. 좀 더 멋진 나를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강했다. 자주 실수하고, 자주 실패하면서 쌓인 감정들이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었을 것이다. 잘못했을 때 들었던 쓴소리, 사람들의 어이없는 시선들, 스스로를 이거밖에 하지 못했냐고 책망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는 점점 움츠려든 사람이 되었다.
음식이 나왔다. 스테이크 두 접시와 파스타 세 가지. 기대보다 맛있는 것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음식을 한 입 베어 물며 우리는 저마다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괜찮네."
"이건 별로네."
맛이 별로인 음식은 실패였을까. 잘 모르는 메뉴를 주문 한 실수였을까. 다음부터는 아는 메뉴만 시켜 먹어야 하나.
그때 아이가 말했다.
"먹어봤으니 됐어. 다음에 안 먹으면 되지. 안 먹어 봤으면 몰랐을 거야."
그 말이 마음에 단단하게 박혔다. 그 한마디는 자존감이라는 단어와 맞닿아 있었다.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나는 늘 결과를 두려워하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가 한 선택이 실패로 끝날 까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 봐. 나는 스스로 움츠러들었고, 나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도전을 피했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스테이크를 한 입 베어 물고 맛이 없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실패라 여기지 않았다. 그냥 먹어봤으니 된 것이고, 다음에 선택하지 않으면 될 뿐이었다.
자존감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해서, 실수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 것. 그냥 경험일 뿐이라고.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힘.
나는 다시 포크를 들었다. 내 앞의 스테이크는 실패가 아니다. 내가 경험한 또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그날 패밀리레스토랑을 나서며 나는 아이에게 한 수 배운 기분이었다. 자신의 선택에 흔들림 없는 모습,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 나는 그걸 닮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