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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감정의 맛 16화

기쁨의 모양, 케이크

:기쁘다

by 새나

미역국을 끓이고, 야채를 썰어 프라이팬에 볶았다. 어젯밤 미리 물에 담가 둔 당면을 건져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간장과 설탕, 참기름을 넣어 잡채를 만들었다. 돼지고기를 달달 볶고, 애호박 전을 부쳤다. 새콤달콤 무침회까지 곁들이니 상이 제법 푸짐해졌다.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다.


이른 아침부터 생일상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피곤함보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생일이란 아이가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가 된 날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했다. 첫 생일상에서 아이는 무엇이 뭔지도 모른 채 손으로 떡을 쥐어 입으로 가져갔고, 세 돌이 되던 해에는 불고기를 한입 물고 오물 거리며 촛불을 불었다. 그리고 올해, 아이는 벌써 열세 번의 생일을 지나왔다.


미역국과 흰쌀밥을 식탁 위에 올렸다. 상은 다 차려졌고, 우리는 생일을 축하했다.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들이 오갔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방긋 웃어 보였다.

"엄마, 케이크 먼저 먹으면 안 돼?"

한참을 준비한 생일상보다 아이는 달콤한 생딸기 케이크에 눈을 반짝였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미역국도, 정성 들여 만든 잡채도, 노릇하게 부친 애호박 전도 아니었다. 아이는 단 하나, 케이크를 원했다.


그럴 만도 했다. 생일이면 케이크가 있어야 하고, 촛불을 불어야 하고, 생일 노래를 불러야 하니깐. 어른이 된 나는 종종 그 순서를 잊지만 아이에게 생일이란 '케이크가 중심이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전 케이크부터 꺼냈다. 아이가 바라는 대로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아이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불었다. 아이가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무엇을 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분홍빛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케이크를 한 조각 접시에 담아 아이 앞에 놓았다.

한입 베어 문 아이의 표정이 사르르 녹았다. 생크림이 입술에 묻고, 딸기가 상큼하게 씹혔다. 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케이크는 기쁨의 모양을 하고 있구나.


둥글고 부드러운 크림 속에 기대감이 가득하고, 촛불이 켜지는 순간마다 환한 웃음이 피어난다. 설탕과 생크림, 푹신한 빵 사이에 기쁨의 나날들이 녹아 있다.


아이는 몇 입 먹더니 케이크 접시를 한쪽으로 밀어 두었다.

"엄마, 나 밥 먹을래"

방금 전까지 가장 먹고 싶어 했던 케이크는 이제 뒷전이었다. 아이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잡채도 먹고, 불고기도 먹었다. 무침회는 매운지 물을 몇 번이고 마시면서도 입안 가득 씹었다.


아이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나도 그랬다. 생일이 오면 가장 먼저 케이크를 원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먹는 건 미역국이었다. 생일마다 케이크가 중심이었지만 마지막까지 오래 기억에 남는 건 함께 둘러앉아 먹던 순간들이었다.


빵집을 지나가다 쇼케이스에 진열된 케이크를 보면 기뻤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생일뿐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했던 졸업식, 가족과 함께 했던 특별한 날들, 그리고 그때마다 들었던 '축하합니다'라는 말들. 케이크는 늘 기쁜 순간을 함께하는 음식이었다.


삶에서 기쁨을 찾고 싶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케이크를 떠올린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진짜 배부르게 하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케이크가 기쁨의 상징이라면 다정한 축하의 말은 우리의 삶을 채워주고 있는 밥 한 끼의 든든함이 아닐까.

때로는 한 입으로 충분하고, 때로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맛. 케이크는 기쁨의 모양을 하고 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빵집을 지나가다 우연히 케이크를 보면 기뻤던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생일마다 둥근 케이크를 둘러싸고, 불을 밝히고, 기쁨을 나누던 순간들. 그 순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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