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어릴 때 소풍 가기 전날 밤은 왜 그렇게 설렜을까.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워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소풍 도시락에는 무얼 싸갈지. 버스 옆자리에 어떤 아이와 앉을지.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지나 있었다. 설렘은 마치 탄산음료 같았다. 뚜껑을 따는 순간 톡 쏘아 오르는 사이다의 그 짜릿한 기포처럼. 설렘이란 가슴속에서 끓임 없이 부풀어 올랐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설렘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어떤 날을 앞두고도 별다른 감정의 출렁임이 없다. 소풍 대신 장을 보러 가고, 도시락 대신 간단히 한 끼를 때운다. 날마다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같은 이야기와 같은 표정을 나누다 보니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 없다. 하루하루가 평범하게 흘러가고, 특별한 감정의 물결 없이 잔잔한 호수처럼 살고 있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길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 어디선가 달큼한 과일향이 났다. 향기를 따라가 보니 담장을 넘어온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무화과의 탐스러운 열매가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살랑 거렸다.
무화과라니.
어린 시절 엄마가 사 주던 무화과가 떠올랐다. 껍질을 살짝 벗겨 한입 베어 물면 입안 가득 퍼지던 달콤한 과즙. 씨앗이 톡톡 터지는 부드러운 식감. 나는 그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우리 집 마당에도 무화과나무를 심어야지.
며칠 후 오일장에서 1년생 무화과 묘목을 샀다. 아직 작은 나무였다.
"이제 막 심은 나무라 올해는 열매를 맺지 못할 거야. 2~3년은 지나야 해."
나무를 파시던 아저씨는 무화과가 언제쯤 열릴 것인가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손으로 흙을 덮고 물을 듬뿍 주었다. 이제 이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날을 기다리면 된다.
그저 나무 한 그루를 심었을 뿐인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2~3년 후, 이 나무에 탐스러운 무화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무화과로 잼을 만들고, 샐러드에 넣고, 그릭 요구르트에 얹어 먹고, 여름이면 시원한 수박과 함께 과일 화채를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어쩌면 나는 거창한 설렘을 바란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 정도의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작은 변화 만으로도 충분히 설렐 수 있다는 것을 무화과나무를 보며 깨달았다.
톡 쏘는 사이다의 청량감이 좋다. 설렘이라는 감정도 좋다. 둘은 닮았다. 사이다를 마실 때의 짜릿함. 입술에 닿을 때는 시원하고, 혀끝에서 기포가 터질 때는 기분 좋은 자극이 퍼진다. 그리고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느껴지는 청랑감. 설렘도 그와 닮았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소소한 변화, 작은 기대감, 아주 사소한 기쁨이 사이다처럼 나의 마음속에서 기포처럼 피어오를 때. 다시 설렘을 느낀다.
나는 더 이상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집 마당에 심은 작은 무화과나무를 보며 몇 년 뒤 달콤한 열매를 따 먹을 날을 상상하니 마음이 두근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