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살면서 많은 끼니를 챙겼다.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때로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재료를 다듬고, 양념을 하고, 불 앞에서 볶고 끓이면서.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음식은 사랑이고, 온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나는... 나를 위해 요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날도 만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아이를 등교시키고, 남편이 출근하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오전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뭘 먹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마땅한 것이 없었다. 밥을 새로 하기엔 귀찮았다. 그냥 컵라면이라도 먹을까 하다가 다시 뚜껑을 덮었다. 입맛이 없었다.
하루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마치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오락가락하는 감정에 휩쓸려 버린다. 무엇 때문인지 모를 서운함과 허전함이 마음 한구석을 채우고 있다. 그런 날이면 아무것도 하기 싫다.
누군가 나를 챙겨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소심한 투쟁을 해보기도 한다. 아무 말 없이 내 옆에서 이것저것 다 해줬으면 하는 그런 날이 있다.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A였다. A는 어른이 되고 친해진 사회친구다. 지나가며 인사만 나누던 사이에서 차도 마시고, 밥도 먹으면서 친해졌다. 서로의 결이 다르지 않아 쉽게 친해졌다.
"보쌈했는데 와서 같이 먹자"
잠깐 망설였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집에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먹을 것도 없고, 무엇보다 A의 한 마디가 마음에 와닿았다.
"요즘 너 얼굴이 어두워 보여서, 밥 한 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A는 그냥 밥을 먹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힘들어 보이니까. 챙겨주고 싶어서 부른 거였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집을 나섰다. A의 집에 도착하니 따뜻한 보쌈 한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겉절이도 직접 담갔는지 먹음직스러웠고, 보쌈 고기는 야들야들했다. A가 맥주도 한 캔 꺼내더니 컵에 따라 주었다.
"속상할 땐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게 최고야."
그렇게 우리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셨고, 나는 꾹꾹 눌러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이야기들도 있었고, 차마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감정들도 있었다. 말을 하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A가 주방에서 김치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엄마도 김치전을 자주 해줬는데.
어릴 때, 기분이 꿀꿀한 날이면 김치전을 부쳐 주었다.
"이거나 먹어라"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졌던 날들이 있었다. 적당히 익은 김치에 설탕을 듬뿍 넣은 엄마의 달달한 김치전에는 위로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
A가 먹음직스러운 김치전을 내 앞에 내밀었다. 보쌈과 맥주로 이미 배가 찼는데도 군침이 돌았다. 바삭한 김치전 한 조각을 한입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퍼지는 따뜻한 맛. 그 순간 울컥했다. 이 단순하고 평범한 김치전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사랑은 늘 그랬다.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단순하게 왔다.
나는 그동안 줄곧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국을 끓였고, 아이가 잘 먹는 반찬을 만들었다. 친구가 놀러 오면 손님 대접을 위해 음식을 차렸다. 그러나 정작 나를 위해 요리를 한 적이 없었다.
A의 김치전에는 A의 마음이 담겼다. 내가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 건강했으면 하는 염려,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 훌훌 털어 버렸으면 하는 따뜻한 위로 그 모든 마음이 음식 속에 녹아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아닐까.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음식이 가진 온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