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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감정의 맛 20화

탕 속의 국물처럼

배려

by 새나

야채를 많이 먹고 싶은 날이면 우리는 샤부샤부 집으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일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삭한 채소를 듬뿍 넣어 먹는 샤부샤부를 좋아하는 내가 이유이기도 하다. 집에서 해주는 채소 반찬은 입에도 대지 않던 아이들이 이곳에서는 신기하게도 가리지 않고 야채를 잘 먹는다. 채소를 국물에 살짝 데쳐 건져 먹는 그 순간. 몸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늘 국물 선택에서 갈렸다. 아이들은 마라 국물을 좋아하고 남편과 나는 맑은 국물을 선호했다. 마라 국물은 얼얼하고 강렬하지만, 맑은 국물은 개운하고 담백하다. 반반 국물을 제공하는 식당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난감하다. 누구의 취향을 맞출 것인가.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하는 순간이다.

"오늘은 마라 국물 괜찮겠어?"

"맑은 국물 먹고 싶은데... 그래, 오늘은 마라도 괜찮아."

어떤 날은 마라 국물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맑은 국물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국물을 정하는 작은 일에도 배려가 필요했다.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야채를 넣을 때도, 고기를 넣을 때도 빨리 면 사리를 넣고 싶을 때도 서로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누군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면을 넣어 버리면 국물은 금세 뿌옇게 변했다. 국물 맛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사람과 얼른 면을 넣어 먹고 싶은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며 젓가락을 드는 순간, 우리는 배려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했다.


탕 요리는 함께 먹는 음식이다. 그렇기에 배려가 없으면 불편한 식사로 변하기 쉽다. 누군가는 고기를 한꺼번에 넣어 버리고, 누군가는 원하는 재료를 찾지 못해 탕 속을 숟가락으로 휘저어 뒤집어 놓는다. 탕 속에 있던 고기를 자신의 그릇에 모두 담아내기도 하고, 아직 덜 익은 음식을 먼저 건져 먹기도 한다. 자신이 먹었던 숟가락을 국물 속에 헹구어 내듯 휘휘 휘저으며 국물 맛을 보기도 한다. 배려가 없는 식탁은 불편하다.


살다 보면, 배려가 필요한 순간은 의외로 많다. 길을 걷다가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도, 배려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된다. 그것이 사소한 순간에 더욱 드러난다.


내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결국 그것이다. 배려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는 편안하다고, 탕 한 그릇을 함께 먹으며 자연스럽게 배려를 배운다. 어느 정도 익으면 건져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원하는 재료는 무엇인지, 국물을 흘리지 않고 덜어내는 방법까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서로를 생각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탕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고, 필요한 것을 나누고, 때로는 원하는 것을 포기하기도 하며 함께 먹는 음식. 적당한 타이밍을 찾지 못하면 재료가 너무 익거나, 아지 덜 익은 채로 씹히기도 한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탕 속의 국물처럼 관계도 금세 탁해진다.


오늘도 우리는 탕을 먹는다. 익숙한 조합 속에서 새로운 재료를 넣어 보기도 하고, 국물을 천천히 떠먹으며 서로의 속도를 맞추어 본다. 그것이 탕을 먹는 가장 맛있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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