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보다 어딘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2019 '월간 윤종신' 6월호 노래 <늦바람>의 가사입니다. 나이 50이 넘었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살아보고 싶은 꿈을 접을 수 없었다며 1년짜리 <이방인 프로젝트>를 결심했다던 윤종신. 그가 오랫동안 진행해온 라디오스타 막방에서 불렀던 노래였어요. 입담 좋은 절친들을 게스트로 초대했기에 한동안 안 보던 프로그램을 플레이했습니다. 깔깔거리며 보다가 막판에 이 노래를 듣고 그 자리에서 꺼이꺼이 오열을 하고 말았어요. 그와 같은 마음으로 내게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을 떠나온 지 7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살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이 도시 저 도시를 넘나들며 소속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나는 이제 여기서 계속 살게 되는 것일까? 다른 곳으로 떠나기엔 이젠 늦은 걸까?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낯선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도시는 이제 뻔한 배경이 되었고, 작은 동네에서 원치 않는 감정싸움에 시달리며 피로가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할 때면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했지요.
그사이 3년의 시간이 더 흘렀고, 저는 이제 10년 차 순천 시민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고민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때의 기억을 조금은 여유를 갖고 회고할 수 있게 되었어요. 늦기 전에 10년의 기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탈서울', '지역 이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관한 책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울의 자원과 기회들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부동산 열풍 속 당혹감과 내집마련을 포기하게 되는 좌절감으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지역에서 누리는 여유와 낭만을 찬양하거나 꿈꾸는 장면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저는 '탈서울'을 하진 않았지만 부산이라는 큰 도시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인 순천으로 왔어요. 저에게도 입만 열면 소도시를 예찬하며 지역 이주를 권하던 허니문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작은 지역 사회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고, 밥벌이는 어딜 가나 쉽지 않은 문제이며, 생존을 위한 경쟁은 어쩌면 여기가 더 치열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게 자유와 위안을 주었던 도시, 많은 기회를 허락해 준 고마운 도시, 좋은 친구들을 한가득 선물해 준 도시 순천. 여기가 좋아질수록 불안도 커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될까요?
처음 독립을 결심하게 된 배경부터, 왜 하필 순천으로 오게 되었는지, 이방인의 눈으로 본 순천과 순천 생활자로서 느꼈던 마음들을 기억해두고 싶었어요. 떠돌이 고양이 같았던 남자친구가 내 집에 눌러앉게 되면서 시작된 아슬아슬 동거기도 써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에 우리가 바랐던 책방을 차려보면 어떨까? 다소 낭만적이고 심히 무모했던 신혼시절, 책방 주인장으로 누렸던 기쁨과 소중한 추억들도 심폐소생시켜보고 싶어요. 소도시 자영업자로서 느꼈던 애환과 몇 년을 살아도 ‘순천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섭섭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아이를 낳고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오랫동안 지켜왔던 가치관이 흔들려 괴로워했던 시절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요. 많은 것을 버리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비혼주의자였던 남친을 설득해 결혼했을 때만 해도, 망해도 남는 장사다-호기롭게 책방을 열었을 때만 해도, 저는 제 선택에 자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생각들이 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하는 선택의 기준들이 영 못마땅할 때가 많아요. 아이 핑계는 대고 싶지 않은데…. 길을 잃은 것 같아 막막하기도 하고, 때론 남은 길이 너무 또렷해 보여 어지럽기도 해요. 바라기는 이 이야기들을 잘 쏟아내고 나면, 그 이야기의 끝에 내가 보고 싶었던 내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흔들리는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