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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Sep 09. 2022

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나의 독립 일지 4


2013년 2월. 혼자 살 집을 구하러 순천에 왔다. 선배 간사에서 퇴사 동기가 된 은의 언니가 다정한 동행이 되어주었다. 혜미가 메일로 보내준 지도엔 순천 시내의 백화점, 수영장, 서점, 병원, 공원 등이 야무지게 표시되어 있었다. 순천 지리를 하나도 몰랐던 나는 그 지도를 두 장이나 프린트해서 닳도록 보았다. 또 하나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십 년 넘게 같은 교회에 다녔던 D오빠였다. 순천의 신도심에서 학생들 수학 과외 선생님으로 잘 나가고 있다고, 순천 가면 형이 맛있는 거 사줄 거라고, 그를 잘 따르던 교회 동생들이 입을 모아 얘기했다. 오랜만의 연락에도 한결같은 목소리로 반겨준 오빠는 집 구하러 올 때 연락 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든든한 지원군들 덕분에 순천에 집 보러 가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으아! 이러다 날아가겠어!"라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 아빠가 전라도 가면 추울 거라고 사주신 패딩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순천의 문화의 거리로 향했다. 미디어센터가 있었기 때문인데 근처에 집을 구하면 심심할 때마다 DVD 보러갈 요량이었다. 시네마테크나 영화의전당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내가 이용할만한 서비스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후에 이곳이 또 하나의 일터가 될거라곤 생각도 못했지.) 혜미가 준 지도에선 그 동네가 보이지 않았다. D오빠가 이 동네를 잘 안다고 해서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미디어센터 건너편 한옥글방에서 몸을 녹였다. 따끈한 온돌방에 도서관이라니.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래된 골목과 길다란 가로수길, 나즈막한 주택, 작은 공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가 참 예뻤다. "이 동네 너무 마음에 들어! 근처에 살게 되면 매일 와야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생각하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예산으로 집의 면적이나 형태는 선택지가 없다는  알고 있었다. 조금 좋은 원룸 아니면  좋은 원룸이겠지. 그렇다면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가? 어차피 모르는 거니 마음껏 희망해 보았다. 산책하기 좋은 동네, 도서관이 가까운 동네, 근처에 수영장도 있으면 좋겠다,  가지가 떠올랐다. 정말로 정말로 운이 좋게도  모든  갖춘 동네와 집을 찾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가구부터 전자제품까지 풀옵션으로 갖춰져 있었고 '유어라이프'라는 건물 이름도 마음에 들었다. 나의 인생2막을 응원해주는 느낌이었다. 가장 좋았던  (지금은 그림책도서관이 ) 순천시립도서관이 바로  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웃장이라는 이름도 귀여운 시장  골목이었는데, 5일장이 열린다는 얘기도 반가웠다. 청소년기를 시장 골목에서 보내서인지 익숙하고 정겨운 동네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문화의거리도 걸어갈  있는 거리였고, 매달 나가는 월세는 아무래도 아까웠는데 전세로도 가능하다니  바랄  없었다. 조만간 아빠와 함께 다시 와서 계약하기로 하고 맛있는 떡갈비를 먹으러 갔다.


일주일  아빠와 다시 방문했을  처음에 보지 못했던 단점들이 보였다. 계약하려고 했던 방은 복도 끝에 있었는데   옆에 외부 발코니로 나갈  있는 출입문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었더니 바닥에 담배꽁초가 가득했던 것이다. 그리고  위로 가 찜한 방의 창문이 있었다.  건물의 세입자들이 흡연공간으로 출입하는 곳이었으니 창문을 열어뒀다간 원치 않는 냄새와 소음과 시선까지 모조리 맞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아빠는 여자애 혼자  집인데 위험해서 안된다며 다른 집을 보여달라고 했다. 건물주는  일대에 비슷한 오피스텔을 여러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원룸을 보여줬다. 발코니 아닌 보일러실과 붙어있는 방이었고, 건물의 지붕 모양 때문에 화장실과 한쪽 벽의 천장이 비스듬한 경사를 가지고 있었다. 원룸의 네모 반듯한 구조가 재미없다고 느끼던 참에 다락방처럼 아늑한 서비스 공간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하나. '노블라이프'라는 건물 이름이었다. 어쩐지 부대끼는 이름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아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으니 얼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순천에 얼마나 머물게 될지 기약이 없었기에 1 전세계약을 했다.




이삿짐 트럭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당장 필요한 옷가지들과, 엄마가 사은품으로 받아놓고 아낀다고 뜯지 않았던 그릇세트가 이삿짐의 전부였다. 자질구레한 물건과 책들은 부산 오갈 때마다 조금씩 챙겨 오기로 했다. 이렇게나 멋진 방을 구했다며 큰소리 칠 준비가 되어있었던 나와 아빠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컴컴한 복도가 나오자마자 “이거 모텔 아니야? 모텔 맞네!”하는 쩌렁쩌렁한 엄마의 목소리에 움츠러들었다. 그 건물은 오래된 모텔을 리모델링해 원룸으로 세를 주고 있었던 것 같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며 “아이고… 딱 봐도 모텔이구만… 이런 것도 못 알아보고…” 혀를 차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모텔을 가봤어야 알지!” 엄마의 외마디 반격이 돌아왔다. “그게 자랑이냐!”


한평생 아빠만 사랑하고 아빠랑 지지고 볶고 살았던 엄마는 내게 늘 얘기했다. "연애는 많이 해봐야 한다. 많이 만나봐야 사람 보는 눈도 길러진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엄마 딸은 연애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이건 엄마의 관점이고 실은 '관심'은 많았다. 그치만 어릴 적부터 유난히 유행가 속 슬픈 노랫말에 필요 이상의 공감능력을 발휘하던 나는 이별 같은 걸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게다가 내가 속했던 교회와 선교단체는 공동체 내에서 교제하는 걸 지양하는 분위기였고 나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선배들이 강조하던 '3말 4초'*를 신봉했고, 수련회에서는 혼전순결 서약을 가장 비장한 표정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졸업 후엔 후배들과 제자들을 단속하기 바빴다. 사심 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이 멋져보였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엄마는 일찍부터 피임의 중요성을 가르치려 했지만, 보수적인 딸은 엄마가 딸한테 이상한 거 가르친다며 질색팔색을 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그런거(?) 절대 안할거라고 소리치면 엄마는 너는 젊은 애가 너무 고지식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던 딸이 이 방에서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는 사실에 한껏 도취되어 있었다. 쨍한 싱크대 컬러와 왕꽃무늬 포인트 벽지, 침대 머릿장과 옷장의 보라색 벨벳 쿠션, 로만쉐이드라고 불리는 물결 모양 커튼에 주렁주렁 달린 구슬… 나름대로 ‘노블레스’를 구현시킨 온갖 장식들로 둘러싸인 방. 내 취향과는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진 방이었지만, 충분히 맘에 들었다. 옛날에 모텔이었으면 어때? 지금은 이렇게나 아늑한 나의 방인걸. 나를 아는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이곳에선 오로지 나만 사랑하리라 보랏빛 꿈을 꾸었다.




*3말4초 : 이성교제(교회에선 이렇게 불렀다)는 3학년 말, 4학년 초에 하는 것이 좋다는 기독교 선교단체의 전설. 1-2학년 때 만나서 사귀다가 헤어지면 누군가 이탈하게 되거나 공동체 분위기가 와해될 가능성이 높기에 그전까지는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고 3말4초에 사귀기 시작해 졸업 후 결혼에 골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신화.




2013년 1월, 혜미가 보내준 정성 가득 순천 지도. 지금 보니 사료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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