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일 구하기

by 박모카

말 그대로다. 나는 캐나다에서 구직 중이다.

처음에는 한 곳에서만 일할 수 있는 비자로 왔기 때문에, 여기에 묶여야할까 전전긍긍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두 번째 받게 된 날에는 날아갈듯이 기뻤다. 마음속에서 '도비는 자유야!'라는 문구가 자꾸 되새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일을 찾아야했다. 다음 관문이 남아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경력과 가장 잘 맞는 직군은 경쟁률이 아주 높았다. 500:1 정도였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쪽이다보니 그런가 싶었다. 원서 접수를 200여군데 한 것 같았다. 연봉이 높은 곳 중에 연락이 온 곳은 없었다.


다행히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한 곳은 door to door fundraising 부문이었다. 세이브더 칠드런 같은 단체에 후원을 해달라고, 개인 집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고, 사업 설명을 하고, 도네이션을 받아오는 일이었다. 하루에 꼭 채워야 하는 할당량은 없었고 시급제로 돈을 번다고 했다.


두 번째 일은 재택근무였다. 한국어 통역사였다. 한국인이 병원에 전화해서 통역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전화 사이에 끼어들어서 영어와 한국어를 번역해주는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임신 중에 재택근무라니. 가장 좋아보이는 업무 아닌가! 급여가 많지는 않아도 아주 적지도 않았다. 일하는 시간도 내가 정할 수 있었고 트레이닝도 3주 기간이 있어서 겁먹을게 없었다. 나는 이 일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 곳이야 말로 내가 식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 같았다.


서류전형, 영어 전화인터뷰, 영어 테스트, 한국어 테스트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트레이닝을 시작하자는 이메일이 왔다. 절차 단계가 꽤 많았지만 토익 800점을 넘는 사람이라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난이도였다. 사실 나도 영어 시험에서 떨어질까봐 (틀린 문제가 계속 생각났다.) 걱정을 많이 했다. 오죽하면 한국어 원어민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싶어서 한국어 테스트 결과에도 전전긍긍했다. 나중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또 다시 기뻤다. 아니, 사실 기쁨은 영어 테스트에 통과했을 때 최고조가 아니었나 싶다.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도 싱글벙글, 난 이제 곧 떠날꺼라는 마음에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해도 신경이 크게 쓰이지 않았다.


기쁨을 두 번 넘고나니, 또 다시 넘어야 할 산이 생겼다. 집을 알아봐야 하는 것이었다. 남편과 딸이 머지 않아 밴쿠버로 올텐데, 그때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세 가족,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기가 살만한 장소를 알아보니 월 250만원은 기본으로 들어가는듯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알아봤던 집 구해주는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숙소를 시중보다 1-20%정도 저렴한 금액에 내놓고 있었다.(다행히 나는 학생신분이라 지원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제시하는 금액이 130만원 정도로, 내가 알아봤던 다른 곳보다 훨씬 싼 것이었다. 아파트 종류의 차이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곳에 머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빈 방이 없었다. 또다시 숙소를 찾아 헤매야했다. 숙소가 왜 문제였냐면, 내 월급이 그닥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관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를 반복하다보니, 세상 사는 것이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것만 해결되면 모든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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