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SNS를 보다가 잠들던 패턴이 망가진 것은 몸이 아팠던 어느 날이다. 몸살이 걸릴 것 처럼 피곤한데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임산부일 때 먹었던 입덧약을 먹었다. 입덧약을 먹으면 다음날까지 하루종일 졸리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그만큼 잠을 푹 자게 해주어서 몸이 개운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입덧약을 먹었던 날 밤은, 너무 졸려서 SNS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신기하게도 루틴이 되었다. 나는 3주째 SNS를 하지 않고 있다. 심심하면 어쩌지?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머리는 매일 바쁘다. 한국 돌아가면 사람들한테 이 선물 사주고 싶은데라던지, 내일은 여기 가봐야지라던지 일상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한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면, 일생을 미뤄왔던 소설쓰기도 시작했다. 소설은 잘 읽지도 않고, 생전 두려워하며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것인데 드디어 이것도 하고 있었다. 소설쓰기를 시작하니까 안그래도 바빴던 삶은 더 바빠졌다.
상상하느라.
불과 한 달 전, 밴쿠버에서 800억 로또 당첨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그게 가능한 액수인가? 사실 로또 당첨은 내가 되었다며 머리를 속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탔다. 이걸 소설로 쓸테다. 글쓰기를 참 오래 해왔던 나지만, 소설이라는 '창조적인' 활동은 너무나도 생소하다. 뼈를 깎아내는 고통이 이런건가 싶기도 하다.
하여튼, SNS가 없는 삶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좋았다. 눈이 건조해서 아픈 것은 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SNS를 과하게 하는 날이면 찌르는 듯이 고통스러운 통증은 없어졌다. (나아진건가?) 여태 미뤄왔던 곳에도 가고, 미뤄왔던 활동도 하고, 새로운 생각도 하느라 머릿속이 새로운 것으로 꽉 찼다. SNS가 들어올 틈이 없다. 예를 들어, SNS를 하는 시간이 없어지니까 돈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어? 이렇게 하면 돈 버는거 아니야?'라는 아이디어가 하나씩 떠올랐다. 어렸을 때, 돈을 투자해서 주택을 사냐마냐 하다가 흐지부지 됐다. 사실 주택을 살 돈도 없을 뿐더러 깡도 없었다. 최근에는 밴쿠버 집을 보러 다녔다. 이정도 되는 하우스를 사면 1층을 세를 주고 2층에 내가 살면 몇 년이면 갚겠다는 셈을 하게 됐다. 구체적인 숫자가 입력되니, 내가 모아야 할 못표 금액이 생겼다. 웃기게도, 여태까지는 '난 돈이 없잖아'라며 집을 살꺼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목표도 없었고 어느 길을 걸을지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미뤄왔던 것이다. SNS를 보면서 '와 경매나 해볼까'라며 상상만 하다가 매 번 머릿속에서 끝이 났었다. 물론 나는 밴쿠버에서 평생 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밴쿠버 주택을 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걸어다니며 구체화해보니 나에게 필요한 돈은 얼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어른같아진 느낌이다.
디지털 디톡스 한 달 쯤 되자, 인스타그램 버튼에 스믈스믈 손이 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무 생각이 없이라는 것이다. 뭔가를 보고 싶구나 생각이 들어, 내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책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SNS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소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시작 할 수 있었다.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 아무래도 소설은 실화같은 내용보다는,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실제로는 감히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결론이 났다.
- 작품 하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소설에 있어 무조건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캐릭터였다. 캐릭터의 성격이 확실해야 그 캐릭터가 작품의 내용을 이끌고 간다.(여태 살면서 과정보다 결론이 중요했던 나에게는 꽤 반전적인 깨달음이었다.)
- 막연히 생각하면 소설 쓰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가끔씩은 재미있고 쉽다. 많은 시간 어려움을 느끼는게 사실이기는 하다. 소설을 쓰다보면 내가 무슨 짓을 해버린거지라며 이야기가 다 꼬여버렸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풀릴 수 있는 문제다. 망한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록, 극복시키고 나면 성취감이 크다.
옛 어른들이 등산은 인생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소설쓰는 작업도 인생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SNS를 끊고, 그 시간에 (버킷리스트에는 항상 있었지만) 내가 평생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니 나 자신이 또 다시 무럭무럭 자라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