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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롱 Sep 22. 2021

마음이 가난했던 날의 인간관계

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돌이켜 보면 내 마음이 가장 가난했을 때는 20대 때였다. 그때는 습관적으로  소비를 했다. 무엇인지 성에 안 차는 날에는 퇴근길에 시작한 모바일 쇼핑이 침대 맡에서 끝나곤 했다. 그래야 속이 시원했고 뭔가 보상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회사 업무 중에도 특가와 혜택 알림이 오면 즉각적으로 버튼을 눌렀고 몇 개의 사이트에서는 VIP가 되어 달마다 특별 할인 쿠폰을 받았다. 그런 재미에 푹 빠져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와 친했던 C의 경우엔 나의 패턴과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온라인보다는 백화점에 직접 방문해 쇼핑을 했다. 그리고선 늘 구매한 물품을 내게 자랑했다. 마치 그걸 판매하는 사람이라도 된 마냥 그 상품의 좋은 점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렇게 자랑한 다음 날이면 C는 어떻게든 그 물건의 트집을 잡아 환불을 하러 갔다. 그게 몇 번 반복되자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별 말하지 않았다.  


짐작컨대 그녀는 물건이 필요해서 쇼핑을 한 것이 아닌 백화점에서 받는 서비스를 좋아했던 것 같다. 잘 차려입고 백화점에 가면 늘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물건을 사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꽤나 컸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보면, 나 역시 소비를 통해서 대접받는 느낌을 좋아하고 온라인에서 붙어진 VIP에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었기에 당시 그녀와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은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의 20대는 주로 실패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래서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져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와 C는 스트레스 해소와 자존감 회복을 위해 많은 시간을 쇼핑에 허비했고 그만큼 돈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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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비를 통해 보상받고 싶어 했던 습관은 나의 연애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돌아보면 내 연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다름 아닌 소비이다. 유명 카페, 유명 맛집, 유명한 어떤 것들을 따라서 나는 전 남자 친구와 시간을 쓰고 돈을 썼다. 나름대로 재미있고 좋았지만 문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새로울 것이 없다는 데 있었다. 새롭게 할 만한 소비가 없자 나는 연인관계마저 식상하게 느꼈다. 술을 마셔도, 여행을 가도, 디저트를 먹어도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거기 가서 뭐하게?'라는 질문을 서로 던지고 있었다.  


마음이 가난했을 때 내 연애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알았다고 하기보다 데이트하는 방법에 대해 알았다고 하는 편이 맞다. 누군가와 진솔하게 대화하는 것보다 어딜 가서 즐겁게 놀고 사진 찍는 것에 더 심취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 보상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마무리 짓는 금요일 오후부터 나는 소비를 통해 나 스스로를 기쁘게 만들어야 했다. 물건을 사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데이트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그 사람 역시 나를 소비했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과 돈을 썼다. 20대의 내 연애는 소비를 위해 시작되었다가 그것이 지루해질 때쯤 끝났다.


이런 패턴이 몇 번 반복되자 나는 연애 자체에 무관심해졌다. 그리고 이제와 서야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랑에 대해 허무함을 느껴서 그랬다기보다 그 방식이 문제였다고 생각이 든다. 늘 소비를 통해 마음을 채워왔기 때문에 연애가 어려웠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기에 앞서 나 스스로를 충분히 케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보상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먼저 잘 대하고 만족스럽게 해 줬더라면 쇼핑이나 다른 사람을 통해 보상받고 싶단 마음이 줄었을 텐데 참 아쉬울 따름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과거보다 자존감이 높아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나는 소비가 없어도 괜찮은 만남을 지향한다. 친구 관계에서도 그렇다. 백화점을 드나들던 C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온라인 쇼핑도 필요할 때만 한다. 쇼핑메이트가 사라지니 그 자릴 대신한 운동 메이트가 생겼다. 재미있게도 친밀함은 꼭 소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와 정비례하지 않는다. 최근까지 등산을 함께했던 지현과 함께 쓴 돈이라곤 고작 교통비와 만원 내의 점심 값이 전부이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나는 등산을 하며 그 친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번번이 사진을 함께 찍지도 고급 레스토랑에 가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예전과 다른 친밀감을 느낀다. 반면, C와는 꽤 많은 돈을 함께 썼지만 연락 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연인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건 예전과 다른 식의 만남을 꿈꾸게 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직장동료들이 내게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길래 눈이 높아 아무도 안 만나는 거냐며 질문을 던졌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싶다가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하루 종일 산속을 해 집고 다니며 등산을 해도 재밌는 사람, 하루에 1만 원 안팎으로 써도 질리지 않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자 질문을 던진 상대는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그러니까 안 생기지."라고 대꾸했다. 그 말에 나도 한바탕 웃었지만 이상형에 대한 내 말은 진심이다.

요즘 이런 사진들이 왜 이리 보기 좋은지...

나는 이제 가난하지 않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모바일 쇼핑의 VIP가 되지 않아도 좋고 고급 레스토랑의 인증샷이 줄어도 좋다. 평소에 나 자신을 잘 대해주고 내 마음을 가득 채워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친밀한 교감을 하고 싶다. 필요한 만큼의 돈과 시간을 쓰면서 나와 상대방을 아끼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 오늘의 한 시간도 매트 위에서 집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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