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롱 Sep 15. 2021

술 끊고 나니 알게 되는 것들

나의 요가 에세이 <생각은 멈추고 숨은 내쉬세요> 


요가를 꾸준히 하면서 내게 생긴 큰 변화 중 하나는 더 이상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편의점을 지날 때마다 맥주 한 캔 딱 마시고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냉장고에 맥주 캔이 있어도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와인도 마찬가지로 코르크 따면 그날 한 병 모두 비우던 것이 이제는 엄청 저렴하게 세일을 해도 살 일이 없다.


예전에 나는 술을 좋아했다. 술이 맛있기도 했지만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어서였다. 그때만큼은 유대감이나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고 내 생각을 표현할 때 덜 긴장했다. 또 취한 상태가 되면 평소보다 쉽게 잠들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잠을 잘 못 자서 고민이 많았다. 알딸딸한 취기에서 잠들기가 수월하다는 경험을 하고 나니 잠을 청하기 위해 알코올에 더 의지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는 밤이 길어지면서 숙취 때문에 속이 쓰리거나 잠을 많이 자도 개운하지 못한 상태가 많아졌다. 또 건강도 점점 나빠졌다. 독감에 걸리기도 하고 위염이 생기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던 때에는 약을, 약을 먹지 않았던 때에는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렇게 살다 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저녁 클래스에 가면 나와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이 마치 찜질방에 온 것처럼 매트 위에 누워있다. 목과 어깨가 아프고 눈이 뻑뻑하고 가슴이 답답한, 어떻게 보면 안 아픈 곳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런 사람들이 왜 집에서 쉬지 않고 지친 몸을 끌고선 매트에 누워있는 것일까? 요가를 시작할 무렵, 나는 이런 의문을 갖고 클래스를 갔다. 요가를 하면 아무래도 몸을 쓰는 것이니 몸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 했는데. 예상과 달리, 요가 클래스를 마치고 집에 가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어떤 자세를 하고 있던 날, 클래스를 주관하던 선생님은 내게 "회원님은 목 어깨에 긴장이 많으시네요. 이 긴장만 풀어도 시원하실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다. 긴장 풀기 방법은 단순했다. 목을 몇 바퀴 돌리고 올라간 어깨를 자연스럽게 내려주는 동작을 몇 차례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하면서 나는 내가 평소에 어깨와 목에 많이 힘을 주고 살며 긴장이 풀리지 않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회사만 가면 뒷목이 땡겼다.

회사에서는 모니터 앞에 몇 시간씩 구부정하게 앉아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늘 눈치를 보다 보는 성격이다 보니 자연히 긴장을 하며 살았다. 하루 8시간 이상을 그렇게 지내니 목 어깨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자연스럽게 긴장을 좀 풀 수 있는 술자리를 찾았고 술로 인해 감각이 무뎌지자 몸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또 술을 마시면 솔직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내 속마음을 말하기보다는 어떤 관념으로 인해 반대되는 말을 자주 했다. 마음속에 화가 가득해도 그걸 표현하는 건 유치하다는 생각 때문에 '괜찮다' 말을 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어도 눈물을 흘리기 대신 '그럴 수 있지'라며 웃어넘겼다. 나는 그만큼 내 속마음과 행동이 반하는 일상을 살았다. 술은 그런 패턴을 유일하게 깰 수 있었던 하나의 방법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술기운을 빌려야 나는 내 마음과 내가 하는 행동을 일치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시고선 살짝 눈물을 보이는 것도, 목청 높여 내 주장을 하는 것도, 평소 서운했던 감정을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용인되니 말이다. 그제야 나는 스스로를 포용하고 나 자신에게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어떤 판단을 하고 분별하는 습관을 넘어 유치하지만 솔직한 표현을 할 때 내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 요가를 하면서 나는 몸 마음의 불일치 패턴을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타인의 반응에 심하게 흔들리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늘 긴장하며 산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요가 클래스에서 동작 하나를 하면서 나의 마음과 몸을 한곳에 집중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신기하게 어떤 동작을 할 때는 마음이 답답하고, 어떤 동작을 할 때는 화가 나고 짜증이 치솟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또 이런 감정을 갖고 있구나를 오롯이 느끼며 그것을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술에 취한 것이 나에게 어떤 베네핏도 주질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취하지 않고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나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쭉 뻗으니 시원한데...마음은 어떻니? 너도 시원하니?

아직도 나는 수제 맥주를 좋아한다. 가끔 화이트 와인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평온하고 이완된 상태는 굳이 술이 아니어도 가능하니까. 술을 끊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이다. 이제 술김을 빌려 말하거나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는 일은 없다.

이전 10화 나는 왜 혼자가 더 편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