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주스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몇 모금 더 삼켰습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해치우자 집이 보였습니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습니다.
덜그럭덜그럭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소리가 왜 나는지 알았습니다. 공부, 엄마, 과외, 구구단을 떠올리자 새가 날갯짓하듯 귓속이 시끄럽습니다. 얼굴을 찌푸리며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끼이익~
검은색 승용차가 수연이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수연이는 놀라서 주저앉았습니다. 앞문이 열렸습니다. 선글라스를 쓴 아저씨가 벌게진 얼굴로 화를 냈습니다.
“아까부터 빵빵거렸잖아. 정신 차리고 다녀!”
“갑자기 달려오는 차가 잘못이지!”
뽀글 머리 할머니가 뒤에서 쑥 나타났습니다. 처음 보는 할머니지만 수연이 대신 목에 핏대를 올렸습니다. 아저씨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으로 차에 탔습니다. 차는 검은 매연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큰일날 뻔했구나.”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할머니는 친절했습니다. 수연이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많이 놀랐구나. 숨 크게 쉬어 봐.”
수연이는 그제야 후들거리는 몸을 다잡았습니다. 할머니를 보며 고개도 꾸벅 숙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연이의 말에 할머니가 싱긋 웃었습니다.
“인사성이 바르네. 너한테 이게 필요해 보이는구나.”
할머니 가방에서 분홍색 주머니가 나왔습니다. 수연이는 손바닥에 놓인 주머니를 가만히 봤습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할머니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더운 바람만 등을 쓸고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