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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혜 Oct 18. 2024

귀이개 사용법 5

선생님이 떠났습니다. 엄마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습니다.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너 학교에서도 이러니? 산만하고 대답 못 하고…….”     

귓속에 쥐가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잔소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사이로 흩어졌습니다. 수연이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귀도 후볐습니다. 화가 난 엄마가 거실로 나갔습니다.      

“이게 뭐니?”     

엄마가 거실 소파에 있던 분홍색 주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수연이는 오자마자 과외를 받는 바람에 풀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수연이가 손을 뻗을 새도 없이 엄마가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었습니다. 누런 귀이개 하나가 툭 떨어졌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나 착하다고 선물로…….”     

“그럼 모르는 사람한테 받았단 말이야?”     

엄마 눈썹 사이에 주름이 세 개 잡혔습니다. 최근 일어난 아동 대상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엄마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뉴스를 시작한 것처럼 무서운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수연이 귀에서 작게 덜그럭 소리가 시작됐습니다.     

“여보, 무슨 일이야? 수연아!”     

뒤늦게 퇴근한 아빠가 잔소리 대열에 함께했습니다.      

“나쁜 사람 아니면 됐지 뭐.”     

“큰일날 수도 있었다고!”     

학교 마치고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엄마, 아빠가 서로 싸우듯 말을 나눴습니다. 과외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수연이가 공부를 못 하는 건 좋은 친구들을 안 사귀어서 그런 거야.”     

아빠는 수연이가 밖에서 뛰어놀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빠, 나 민지랑 놀고 싶어.”     

“민지? 걔는 학원도 안 다니고 부모는 대체 뭐 하는……. 아니다. 아무튼 그런 애들 말고.”     

아빠가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거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랑 놀아야 서로 경쟁해서 더 발전하는 거야.”     

“집에 독서실 책상 사 주고 감시해야겠어!”     

엄마, 아빠는 서로 자기 생각이 더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수연이는 우두커니 서서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덜그럭덜그럭     

귓속에서 전쟁이 난 것 같았습니다.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수연이는 귀를 감싸안고 주저앉았습니다.

책상 위에 귀이개가 보였습니다. 한 번도 혼자 귀를 파본 적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덜그럭 소리와 엄마, 아빠의 잔소리로 온몸에 땀이 났습니다.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귀이개가 마치 자기를 봐달라는 듯 반짝였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습니다. 뜨거운 김이 입에서 훅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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