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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간 텃밭

그리고 토마토 요리

by 여름지이

장마가 쓸고 간 텃밭은 좀 어지럽다.

키 큰 가지들은 꺾이고 풀들은 우후죽순처럼 자랐고 밭과 밭사이의 둑은 평평해졌고 열매들은 터지거나 물렀거나 떨어졌다. 방울토마토들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모습은 가까이서 보면 처연하고 멀리서는 붉은 앵두처럼 앙증맞다.


38번 밭은 떨어진 열매들이 거의 없다.

얼마나 부지런히 따먹었는지 말이다.

장마 중에도 사이사이 붉어가는 토마토를 따 왔다. 햇살이 없이 장대비를 맞는 토마토가 장하게도 매일매일 익고 있더라. 갈 때마다 붉어지는 것들을 몇 알씩 따와 통풍이 잘되는 대바구니에 담아 후숙을 시켰다. 모은 것들이 후숙을 넘어 과숙이 될 것 같아 오늘 드디어 두 번째 캔닝을 했다.

끓일수록 라이코펜이 증가하여 붉은 색을 띈다..


첫 번째 할 때보다 이번엔 색깔도 밀폐도 마음에 든다. 여름이 담긴 병들이 정말 겨울까지 갈 수 있을까. 저장 음식에 공들여 본건 김치 외에 처음이라 자꾸 병들을 쳐다보게 된다. 제법 살림에 고수가 된 것 같은 스스로 착각하게 만드는 병이다.


또 한 가지 시도해 본 것은 토마토 김치찜. 캘리포니아에서 텃밭 농사지으며 건강한 음식을 소개하는 <칼밥>이라는 유튜브에서 배운 요리인데, 무엇보다 간단하여 시도해 보았다. 재료는 묵은지, 토마토, 올리브유 단 세 가지, 결과는 대박! 김치찌개에 양념으로 넣어본 적은 있지만 토마토가 주가 된 건 처음이다. 고기 넣은 것보다 토마토의 풍미가 감칠맛을 더하여 깔끔하고 상큼한 맛이 더위에 떨어진 입맛을 돌아오게 할 반찬이라고 어떤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토마토 붉은색이 바랜 고춧가루를 대신하여 묵은지를 다시 붉게 단장한 빛깔이 먹음직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던데, 글쎄.. 캘리포니아 아줌마와 나의 입맛일까? 시골사람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슬로쿡에 묵은지 한덩이, 위에 토마토 듬뿍 얹어 올리브유 둘러 푹 끓이면 끝~~..



장마 기간을 기점으로 텃밭들은 모양새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디나 푸르렀던 봄의 텃밭들이. 주인이 장기 휴가를 떠났는지 쓰러진 채로 조금씩 쇠락의 길을 걷기도, 열정 가득한 어떤 이의 밭은 재도약을 위해 홀랑 벗겨지기도 했다. 쇠락도 도약도 없는 우리네 텃밭들은 그저 힘을 내어 열매 맺기를 멈추지 않는 작물들을 보듬고 뜨거운 햇빛을 견디며 다가올 가을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래도 때가 되어 물러난 감자 고랑을 비워둘 수 없어 열무씨를 뿌려 보았다. 또 나더라! 땅, 너는 정말 정체가 무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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