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를 향해 달리기 하는 유월의 작물들은 어제와 오늘이 눈에 띄게 다르고 덩달아 텃밭지기의 일과 기쁨도 두 배가 된다.
훌쩍 커버린 오이를 툭! 따 우적우적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고, 고춧대 곁순 따기를 잠시 잊는 동안 가지는 여러 개가 되어 버렸다. 보라색 가지꽃은 이제야 올라오지만 허브류 꽃들은 숲을 이루다 못해 옆으로 쳐지는 풍성함을.
어느 *문학하는 정원가의 말처럼 텃밭일은 정말 충족되지 않은 열정인지 늘 ‘마음껏’ 이 없고 ‘이제 그만!’ 끊어야 하는 중독성 있는 일. 요즘 한창인 토마토 곁순따기, 가지치기, 꽃 따기는 더 그렇다.
문제는 영양과잉, 질소과잉이었다. 전에 안 하던 낙엽멀칭이란 걸 해놓고 얼마나 뿌듯했던가. 기본으로 나오는 퇴비만 가지고도 별 탈 없이 키웠는데 올해는 과한 의욕을 부려 동티가 났나 보다. 사실 영양보다는 땅의 상태, 수분유지가 더 큰 목적이었지만 결과는 영양 과잉으로 추정되는 뜻밖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나무가 될 것 같은 기세로 덩치가 커지고 잎은 무성해져 사이의 바람길을 막았다. 투박한 아래 잎은 돌돌 말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연한 가지가 배배 꼬이는 행색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유튜버들이 가르쳐 준 생식생장(열매맺기)보다는 영양생장(몸집불리기)의 모습이다. 덩치에 비해 열매 맺기는 부실한. 거름의 성분 중 질소 과잉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처방은 잎과 키로 가는 영양을 열매 맺는 쪽으로 돌려야 했다. 물을 덜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곁순 따기는 더 철저하게.
알았으니 토마토에 더 집착한다.
멀리서부터 토마토 고랑만 눈에 들어온다. 선 채로 드러난 곁순들을 게눈 감추듯 따고, 가위를 들고는 거의 떠받들듯 낮은 자세로 우러르며 한 그루씩 구석구석 살핀다. 열매와 꽃이 잎에 가리지 않게 가지를 치고 자르고, 잎을 솎아내고, 숨은 곁순까지 찾아내어 싹둑싹뚝. 꽃자루 끝에까지 돋아나는 잎을 보면 가위질은 더욱 거세진다. 고랑에 특유의 향이 오르고 올라온 햇빛에 온 가지가 금가루를 뿌린 듯 노랗게 반짝이지만 밭멍할 시간없다. 목표인 열매와 꽃은 안전한가. 되도록 한 가지에 세개만 남기려 이미 맺은 열매를 자르고, 피는 꽃을 솎아내는 반토마토적인 행위는 이어졌다.
재미로 키운다면서 어느새 상업농가를 흉내 내고 있었다. 한번 시작된 일,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하여 습관처럼 요즘 밭에서 이러고 있는데, 가위손이 담을 넘었나? 지나가던 이가 이런 말을 흘렸다.
아유, 토마토는 가위로 키운다는데, 정말 그러고 계시네요!
네??? 정말 그런 말이 있어요?
귀가 번쩍하여 고개를 들었더니, 양산을 든 자그마한 체구의 중년남자가 생글거리며 가까이 서 있다. 텃밭에서 낯선 이와 이런 류의 대화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을 수 있는 일. 발행한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는 것처럼 가꾼 텃밭도 행인1에게 공감을 주어 즉석에서 텃밭에 관한 한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다. 좀 해본 사람인지 작물마다 조목조목 건드려주었지만 이분의 화법 싫지 않다.
많은 상추는 김치를 담아 먹으니 괜찮더라구요.
앗, 김치를요? 레시피는.. 그냥 보통 김치 양념인가요?
네, 절이지 않고 버무려도 아삭아삭하니 열무김치 대신할 수 있어요.
아, 아내가 상추 넣은 된장국을 썩 반기지 않더라구요. 고정관념을 깨기가 어렵던데, 상추김치는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토마토는 가위로 키운다는 말을 얻었다.
재미로 하는 일에 너무 과몰입하나 스스로 겸연쩍어하고 있었는데, 조금 우습고 은근 의미심장하다. 적어도 토마토를 심었다면 누구나 가위질을 해야 한다는 것, 딱 딱!
그럼에도 나가다 만난 이런 풍경은 달리는 마음에 숨 고르기다.
딸기처럼 기며 자라는 방울토마토. 텃밭에 입성했으나 운 좋게 자유와 순수한 의지를 맘껏 펼치고 있는 이 야생 앞에서 심장은 잠시 쫄깃하다. 어디에도 문제는 없어 생이 다할 때까지 그저 살아갈 것이다.
의도가 듬뿍 들어간 오늘 아침 144번밭 토마토. 시작을 했으니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그나저나 모레부터 벌써 장마라는데, 이래서 우리 기후에서는 노지 재배가 어렵다고 하는가 보다. 빗속에서 익어야 하다니.. 옛날 장마철에 빨래 말려 입 듯 사이사이 익어가길!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