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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이 쉽다

by 여름지이


작년에는 땅콩을 심어 까치랑 나누어 먹었다. 다시는 안 심으려는 이유가 되었지만 또 때가 되니 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이유는, 물론 공들이는 토마토에 이롭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모종이 아니라 집에서 촉을 내어 심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다.

영상에서 다른 작물들과 달리 뿌리 내기가 쉬웠다. 흙이 아니라 물에 불린 걸 이틀만 촉촉이 수분 유지를 해주면 금방 촉(싹)이 나왔다. 촉은 뿌리가 될 것이니 땅에 꽂으면 된다고. 이러니 까치 일은 나중 일이고 자가 파종을 해볼 수 있다는 설렘에 시도해 본 것이다.


여주 땅콩을 *팡에서 주문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안와 판매자에게 전화했더니, 이유를 둘러대고는 뭐 하러 사냐고까지 물었다.

- 싹 튀워 심어보려고요.

- 아, 요즘은 주로 모종을 심습니다. 잘 안 날 수도 있어요.

- .. 영상에는 이틀 만에 나던데요.

- 영상이니까 그렇죠..

- 보내주기나 하세요.

땅콩을 판매하는 것보다 모종 사업에 주력하는 사장님이 분명하고, 뒤에 오일장에 가봤더니 비슷한 양이 삼분의 일 가격이더라.


그분이 틀렸다는 건 며칠 만에 나타났다.

물에 불려 저렇게 젖은 키친타올로 덮어 놨더니 정말 이틀 만에 촉이 하얀 점처럼 올라오고,


다시 이틀 만에 저 정도 길쭉해져 땅에 꽂았다. 기세를 몰아 심은 것들이 파릇한 식물로 얼마만큼 올라올지는 의문이라 촘촘하다 싶을 정도로 발아한 것들을 몽땅 토마토, 가지, 고추 아래 한알한알 눌러 심었다.


텃밭의 5월은 여름 채소 모종들을 땅에 아주심기하는 때이다. 요즘은 워낙 파는 모종이 일찍 나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일교차가 줄어드는 5월에 옮겨 심어야 실패가 적다. 하여 땅콩은 가을 수확이니 모종의 전 단계 씨를 심는다. 계절 따라 텃밭 작물들 시간이 참 정교하다.

뒤늦게 봄비가 장맛비처럼 제법 왔고 낮 기온이 오르고 낙엽멀칭 아래는 꿉꿉할 것이다. 어린 지네 같은 길쭉한 벌레가 가끔 그 아래에서 나와 소로로 지나갔다. 어찌나 몸놀림이 매끄러운지, 미생물 번식이 되고 있다는 표시라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촉에 기대어 땅속에 밀어 넣은 땅콩은 얼마 동안 하늘 꿈을 꿀까.


딱 일주일있었다.

빼꼼히 올라온 초록잎을 발견했다.

5, 23일
6, 6일

점점 풀처럼 여기저기 인걸 보니 심은 것은 거의 다 올라온 것 같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키가 크는 작물의 열매는 주렁주렁 익을 것이며, 땅콩은 주변을 푸르게 덮어 땅 건조와 잡초를 막을 것이다. 겉은 이러한데 땅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 토마토 예를 들면, 땅콩 뿌리에는 미생물이 많아 다른 작물의 뿌리에 없는 미네랄을 땅으로부터 흡수해 토마토에게 준다. 또한 토마토 뿌리와 땅콩 뿌리는 잘 맞아 땅 속 미생물까지 풍부해진다. 이렇게 쓸모 있는 땅콩이었다니!


구역을 정해 한 작물씩 오똑하니 심어놓고 풀을 깨끗이 매어 정갈한 상차림 같은 텃밭은 보기에 좋다. 물 준 땅은 늘 촉촉하고 작물들이 집중적으로 보호받아 때깔이 좋다. 점점 밋밋하고 심심해져 매력은 떨어진다.

올해는 멀칭에 풀도 살짝 내버려 두고 섞어 심기를 시도해 보니 자연스럽게 조금 풍성해진 느낌이다. 텃밭이 사람이라면 아기티를 벗었다고 할까. 스스로 도우는 마른 텃밭을 지켜보고 싶다. 비가 단물이 되게.

텃밭도 집처럼 돌보는 이의 물질화된 영혼이라면 할 말 없다.


6월 9일

토마토옆 바질과 땅콩
가지와 고추아래 땅콩
토마토아래 카모마일과 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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