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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멀칭

by 여름지이


*멀칭: 농작물을 재배할 때, 흙이 마르는 것과 비료가 유실되는 것, 병충해, 잡초 따위를 막기 위해서 볏짚, 보리짚, 비닐 등으로 땅의 표면을 덮어 주는 일



텃밭 3년 차,

고맙게도 세 번씩이나 텃밭이 운으로 주어지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거기다 겨울 끝자락에 본 여러 자연재배 텃밭 영상들은 '이제는' ‘좀 더’ 해볼 의욕을 불어넣었다. 영상에서는 텃밭 한켠에 퇴비간이 있었고, 봄재배 전에 낙엽을 밭고랑에 듬뿍 뿌려 놓더라. 직접 발화시킨 채소 모종들 아주심기를 위해 자연 멀칭 격인 그 낙엽을 들추었을 때, 땅은 모락모락 분이 나는 삶은 감자처럼 포실포실해 그냥 손으로 쓱쓱 헤집어 모종을 심었다. 어찌나 그 장면이 달콤하고 부럽든지.


144번 밭에는 돈 주고 산 모종을 심고, 일부는 직파(직접 땅에 파종)를 했다. 주 작물인 찰토마토 종류에 눈떠 보통의 유럽종이 아닌 동양종 '도태랑' 이란걸 선택해서 심었다. 요리 재료가 아닌 생과로 먹기 좋은, 햇살 아래 낭게에서 익어있는 걸 쓱 따서 먹으면 미지근하게 덜큰한 그 토마토.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이 먹은 여름의 맛 그 토마토 종류다.

의욕이 앞서 조금 일찍 심은 탓에 전혀 관심밖이었던 일교차를 주시하며 애를 태우긴 했지만 그럭저럭 크고 있고 직파한 허브류들도 듬성듬성 올라오고 있다.


문제는, 넘치는 의욕으로 밭에 매일 가보면 아직 풀마저 올라오지 않은 민둥한 땅이 자꾸 아쉽다는 것이다. 비닐멀칭은 금지되어 있으나 자연 멀칭은 딱히 권하지 않는 분위기라 그동안 이 시기는 늘 그랬는데 올해 유독 왜 이것이 눈에 자꾸 들어오는지. 그 웬수 같은 풀이라도 빨리 올라와 덮어줬으면 싶을 정도로 벌거벗은 땅이 안타깝다. 겉흙은 자주 마르고 헤집어보면 포슬함과는 거리가 멀다. 물 주기 전에 밭고무래 같은 걸로 땅을 쪼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늦긴 했어도 텃밭녀의 안테나는 고랑을 덮어줄 ‘무엇’을 찾고 있다. 텃밭 가는 길, 이제는 초록인 사이에 바짝 마른 채 삐쭉 올라와 있는 키 큰 풀을 꺾어볼까, 예초기의 산물 낭자한 풀더미를 모아볼까..


생각을 넘어 행동이 필요한 ‘무엇’을 노래하니 그것이 노래처럼 다가왔다. 결국은 낙엽, 낙엽더미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권정생 동화 <오소리네 집 꽃밭>에는 예쁜 꽃밭을 열망하는 오소리 아줌마가 주변 들꽃들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미 누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멀칭에 적당한 낙엽이 늘 다니는 야산 산책길에 지천에 있었는데, 몸쓰기 싫어 얄팍하게 다른 데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더미가 왜 그날 그때야 들어왔을까. 거기다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들추어 본 게 나만의 유레카! 가 된다. 그저 말라있는 나뭇잎이 아니라, 속은 푹푹 쪄지고 있는 까만 낙엽들이 '발효 중' 표시라도 내듯 특유의 향기(라고 하고 싶음) 머금고 어스러지는 중이었다. 영상에서 퇴비 간에 꽂은 길쭉한 온도계 그것 아래를 은밀하게 목격한 듯 심쿵? 하기까지 했다. 낙엽 아래 흙은 말해서 무엇하리. 까맣고 포슬포슬한 부엽토, 천연 비료가 그곳에 잠자고 있었다.


기다릴 수가 없어 비닐포대를 들고 다시 와 발견한 것을 설레며 담았다. 일단 한 고랑만이라도 얼른 덮어주고 싶어 혼자서 가져갈 수 있는 양을 모았고, 다음 날은 오소리 아줌마처럼 옆지기를 대동하고 나머지 두고랑 용을 주섬주섬 담고 있는데, 나무처럼 서있던 옆지기 왈, 욕심부리지 마라, 고마해라.. 완전 낙엽 모으기에 미친 행색이었나 보다. 이후로 산책길에 늘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니며 조금씩 줍고 있는데, 여기저기 낙엽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을 들추어도 찾고 있는 것이 가득이다. 알고 보니 작은 야산이 멀칭용 퇴비용에 최적인 삭은 낙엽의 보고였다. 늘 그러하였거늘.


나뭇잎에는 채소 등의 초본 식물이 갖고 있지 않은 미네랄이 있다. 채소는 뿌리를 뻗는 부분이 표토층에 불과하지만, 나무는 위로 자란 만큼 그리고 옆으로 가지가 뻗은 만큼 땅 속으로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 나간다. 표토층에서 식물이 빨아들이지 못한 다양한 영양소, 특히 땅 속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는 미네랄들이 고스란히 잎으로 보내진다. 이렇게 보내진 영양소들 중 여분의 양이 가을이 되면 낙엽 속에 담긴 채 땅으로 떨어지고, 땅에 섞이면서 자연을 담은 풍성한 거름이 된다. <텃밭정원 가이드북>에서
이불을 덮고있는 듯한 바질, 카모마일, 딜
훨씬 부드러워진 땅
첫꽃을 따내고나니 두번째 꽃봉오리가 크게 맺힌 토마토


다시 산,

상수리나무 낙엽더미에서 상수리나무 어린 묘목이 올라오고 있다. 눈앞에서 펼쳐진 순환의 현장이다. 그 기운을 조금 가져왔다.






* 채소를 기르고 꽃을 가꾸는 텃밭 정원 가이드북/ 오도 지음, 김시용 사진/ 그물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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