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의 어원은 라틴어로 '초록의 풀'을 의미하는 herba에서 파생되었으며,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영어권 나라들에서는 허브 또는 아브라고도 발음한다.
옥스퍼드사전에서는 허브를 '뿌리 또는 줄기와 잎이 식용, 약용에 이용되거나 향기나 향미가 이용되는 식물을 말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말로 해석한다면 향초 또는 약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서양을 거쳐 들어온 허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생활에서 쓰이는 모든 채소들이 허브라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쓰임새가 많은 마늘과 양파는 그 대표 예라고 볼 수 있다. 오도의 <텃밭정원 가이드북>에서
생활에 쓰이는 모든 채소들이 허브,라는 말에 상식이 흔들린다. 허브라면 영어 이름에 이쁜 꽃과 냄새가 아닌 향기로 말하는 조금 특별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넓게는 우리가 먹어왔던 대부분의 채소들을 허브라 할 수 있었다. 특유의 냄새로 말한다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 중 그것이 없는 것이 어디 있던가. 특히 채소는 입으로 먹는 것이니 맛과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때로는 식용과 약용의 구분이 모호하다. 식용을 하며 약용을 바란다. 바질페스토와 상추쌈을 먹으며 신경이 안정되어 잠이 잘 오길 바라는 것처럼.
허브의 범위가 넓어졌다 해도 한번 심어 본 것은 서양의 그것.. 딜, 바질, 파슬리, 카모마일이다. 퓨전이 되어가고 있는 식생활도 한몫했지만 너튜브 세계가 없었다면 평생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을 곳의 한 여인이 자주 쓰는 식재료가 궁금하던 터였다. 된장찌개 끓이다 마당으로 쓱 나가 따오는 방아잎처럼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어디에 넣어도 풍미가 더해질 것 같은 낯선 곳의 식재료, 그것은 딜(dill)이다.
씨를 뿌렸더니 코스모스잎 같은 새싹이 올라오고 댑싸리처럼 연한 초록 무더기를 이루어 여름이 오기 전부터 방사형 노란 꽃을 피워댔다. 단조로운 밭에 화사함과 생기를 불어넣어 먹기보다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딜. 근처 고랑에 앉으면 또 생전 처음 느껴본 향으로 코가 절로 벌름거려진다. 브이로그에서 처럼 한 움큼 꺾어와 말리는 그림을 시도했지만 습한 날씨에는 상해 버리기 일쑤였다. 장마가 이래저래 문제다. 대신 물에 꽂아 집에서 싱싱함을 즐기는 걸로 만족.
딜이 미나리과라고 나물로 해 먹기는 그렇다. 이태리 출신 파브리 요리사가 처음 한국에 와 놀랐던 건 자기네 나라에서 대부분 향신료, 양념 격인 채소가 '나물'이라는 주요리가 되는 것이라 했다. 버터랑 궁합이 맞는지 레몬딜버터라는 게 있던데 시도해 보기는 또 그렇다. 감자랑 잘 어울린다니 매시트 포테이토랑 비슷한 감자사라다에 딜을 넣어 보았다. 음, 풍미가 대단하다. 그리고 수육 삶는데 월계수잎 대신 듬뿍 넣어 보았더니 먹는 이가 수육에서 버터 맛이 난다는 소리를 해 조금 황당했다. 서양 요리에서 딜과 버터는 세트라 그런가??
여름과 함께 밭과 집은 여러 향들이 불쑥 일어나고 나타났다. 카모마일 또한 궁금해 심어봤지만 보는 것 외에는 달리 이용할 길 없어 꺾어와 물에 꽂아 놓았다. 꺾을 때, 토마토 아래 웅크리고 풀을 뜯을 때, 카모마일 향은 은은하게 다가온다.
바질향은 그에 비하면 물씬이다. 딸때 씻을때 달큰하고 진한 향이 거침없이 올라온다.장마 때 곰팡이 경험으로 올해는 미리 싹쓸이해 와 바질페스토로 만들어 진짜 조금 쟁여 보았다. 두 겹을 쌌건만 냉동실 문을 열면 이제는 친숙한 그 향이 그럼에도 스멀스멀이다.
모종으로 세 포기 심은 이태리 파슬리 또한 향을 경험하기에 좋았다. 실험하듯 페스토를 만들고 파스타에도 넣어 보았는데, 가꾸지 않고 먹기만 하는 사람들 왈, 이건 향이 너무 강해서 왜 향신료로만 쓰는지 알겠다는 말을 했다. 자주 만지고 스치는 사이 내 코는 둔해졌나? 난 괜찮던데.
풀 관리하라는 경고문자를 보낸 텃밭 관리인 눈에는 낯선 식물과 키 큰 작물들 아래 어지럽게 쓰러져 꽃이 피는것들이 뽑아야 할 풀,꽃처럼 보였나 보다. 근데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번식력이 강한 풀꽃 맞다. 향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식물의 몸부림일 테니 야생 그 자체다. 그러한 기운은 사람에게 약용이 되어 치료와 치유를 돕는다.
예민한 현대인들에게 유용한 허브의 주요한 효능은 신경안정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흙냄새, 풀냄새, 꽃향기에 취하고 식탁이 풀밭이 될 때, 초저녁 부터 잠이 쏟아진다. 해만 뜨면 눈은 저절로 떠지고 몸과 마음은 바깥으로 향한다. 손톱 밑은 풀물이 든다. 자연이 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