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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03. 2024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불교를 넘어선 동양사상의 정수

- 헤세, 의도적으로 역사적·불교적 팩트를 틀리게 기술

헤르만 헤세. 사진=Wikimedia Commons

독일계 스위스인 헤르만 헤세. 헤세는 시인이자 소설가, 화가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문인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1943)나 ‘데미안(Demian)’(1919)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유리알 유희’는 헤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클래식이기 때문에, ‘데미안’은 청소년과 청년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영향이 큰 까닭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Siddhartha)’(1922)는 앞선 두 작품만큼의 유명세는 누리지 못한다. ‘싯다르타’가 헤세 사유의 정수를 담은 작품이자, 동시에 동양사상의 정수를 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중적으로 더 많이 읽히지 못하는 건 다소 아쉽다.


‘싯다르타’는 인도 카스트제도 최고 계급인 브라만으로 태어난 주인공 싯다르타가 신분을 버리고 진리를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흔히 ‘싯다르타’를 종교소설이라 정의한다. 이는 틀린 말이다. 싯다르타는 브라만교와 브라만을 부정하고 고된 수행을 하는 사문(沙門), 그리고 불교까지 모든 종교와 권위를 내던져버리는 인물이다.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종교와 수행, 사유가 아닌 모든 부작위를 없앤 삶에서 온다. 모든 권위를 버린 싯다르타는 한때 기녀(妓女) 카마라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상인 카마스와미를 만나 돈을 버는 세속적인 삶을 산다. 이후 종교적 가치와 마찬가지로 세속적 가치에도 염증을 느낀 싯다르타는 뱃사공이 되어 강에서 부작위가 없는 자연의 영원한 생성의 소리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다.


소설 ‘싯다르타’에는 역사적 사실과 모순되는 장치가 있다. 불교의 창시자이자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의 경지인 석가모니 붓다의 출가 전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로, 역사적으로 동일인이다.


반면 ‘싯다르타’에서는 고타마와 싯다르타가 서로 다른 사람으로 나온다. 소설 속 고타마는 깨달음은 얻은 석가모니로, 싯다르타는 그런 석가모니(세존 고타마)를 찾아가 진리에 대해 묻는 수행자로 나오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석가모니를 찾아가 거칠게 요약하면 “당신의 깨달음에는 큰 오류가 있다. 바로 석가모니 당신의 존재”라고 송곳같이 지적하며 석가모니를 떠나 자신만의 깨달음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는 헤르만 헤세가 의도적으로 심은 장치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틀릴 정도로 헤세의 불교적 소양과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 않았다.  헤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이력이 있는 선교사였고, 외삼촌 빌헬름 군데르트는 일본에서 교육가로 활동한 불교학의 권위자였다. 헤세 자신도 1911년 3개월간의 인도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싯다르타는 자신이 얻은 종국의 깨달음을 아래와 같이 벗 고빈다에게 전한다.


“세계는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네. 완전한 것에로 나가는 도상에 있는 것도 아니라네. 아니, 세계는 매순간마다 완전한 것이지. 모든 죄는 이미 그 속에 속죄를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애 속에 이미 백발의 노인이 들어 있는 것일세. 모든 젖먹이에게는 이미 죽음이, 모든 죽음에는 이미 영생이 깃들어 있는 것이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이병찬 옮김, 하서, p.170, 2009.)


“나의 인생도 한줄기 강물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는 장년 싯다르타와 노년 싯다르타로부터 단지 그림자에 의하여 분리되었을 뿐, 진짜 현실에 의하여 분리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전생들도 과거의 일이 아니었으며, 싯다르타의 죽음이나 범천(梵天)에로의 회귀도 결코 미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민음사, p.155, 2002.)


헤세는 실존 인물 ‘고타마 싯다르타’를 ‘고타마’와 ‘싯다르타’ 두 사람으로 나눠 결국 둘이 추구하는 깨달음이 하나라는 진리를 전한다. 종교와 세속, 권위와 부작위, 수행과 일상이 서로 다르지 않으며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으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각)의 일원적이면서 다면적인 모양을 깨친 것이다. 


헤세는 다소 딱딱한 불교식 해석에 숨을 불어넣어 문학적으로 해석했다. 역설적으로 헤세의 불교적 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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