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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03. 2024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임제록> 대승의 꽃

임제선사 활동 당시 살풍경한 중국, 현재 우리 모습

‘임제록’을 처음 접한 시기는 20대 초반이다. 불교도가 아닌 내가 임제록을 접한 계기는 순전히 지적 허세 때문이었다. ‘임제할(臨濟喝), 덕산방(德山棒)’을 워낙 귀가 아프게 들었던 탓이다. 그리하여, 도서관을 찾아 대승의 꽃인 임제록을 집어 들기에 이르렀다.


임제선사와의 첫 만남은 비범했다. 잠시 책을 이곳저곳 넘기다가 발견한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법문은 찌릿했다. 의도는 알겠지만 상당히 와일드한 표현이었고, 이후 이어지는 임제선사의 여러 법거량도 ‘상남자 그 자체’였다. 그러다 옆에 꽂힌 금강경이 눈에 들어왔고 그 참뜻을 오랜 기간 곱씹다보니, 그렇게 임제록은 무의식의 구석으로 밀려났다. 


임제록을 다시 읽은 건 최근이다. 미팅 전 시간을 때우려 방문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홀리듯 집어 들었다. 이제 사회의 완전한 기성세대가 되어 하루하루 생계 활동을 이어가기 빠듯하던 지금. 왜 나는 임제선사를 픽했을까. 임제선사가 마주하고 풀어내야 했던 9세기 중국 사회의 혼돈이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임제선사의 출생 연도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867년에 열반에 들었으니, 당나라가 혼란을 맞은 중당(中唐, 766-835)과 만당(晩唐, 836-907) 시대에 활동했던 것은 분명하다. 중당과 만당 시기는 당나라가 전국 절도사들의 군사력 강화와 환관 정치로 병들어 망국으로 향하던 시기다.  절도사들은 결탁해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었고, 환관들은 저마다 황제를 옹립할 기회만 엿보며 정국을 어지럽혔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오늘 가치 있던 재화가 내일 무가치해지고, 오늘 기댔던 세력이 내일 몰락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동량지재의 재목들도 출신 성분과 연줄에 의해 결정되는 인재 등용 관습에 초야에 묻혔다.

충북 단양 구인사 전경. 사진=삿갓길

임제록을 보면 당시 당나라의 살풍경한 사회상을 보여주는 법문이 나온다.


“진주부의 주인인 왕상시가 여러 관료와 더불어 임제 스님께 법상에 올라 법문해주실 것을 청했다. 이에 임제 스님이 법상에 올라 말했다. ‘산승이 오늘 부득이 인정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올랐으나 만약 조사들의 전통에 따라서 일대사를 설명하여 드러내려고 해도 곧바로 입을 열면 얻지 못하고, 그대들 또한 발붙일 곳이 없다. 그런데 오늘 상시가 산승에게 법문해줄 것을 간청함으로 어찌 근본종지를 감출 수 있겠는가. 따라서 만약 지혜로운 이가 여기 있다면 전쟁터의 장수처럼 곧바로 진을 펼치고 깃대를 꽂아 스스로의 경지를 펼쳐 보여 대중에게 그 증거를 제시해보도록 하라’” (임제록, 임제선사, 종광 스님 강설, 모과나무, p.34, 2014.)


“府主王常侍 與諸官 請師陞座 師上堂云 ‘山僧今日 事不獲已 曲順人情 方登此座 若約祖宗門下  稱揚大事 直是開口不得 無儞措足處 山僧此日 以常侍堅請 那隱綱宗 還有作家戰將 直下展陣開旗麽 對衆證據看’” (임제록, 임제선사, 종광 스님 강설, 모과나무, p.34, 2014.)


법문을 전쟁터의 장수처럼 하라는 묘사다. 이는 임제록의 핵심이자 가장 격조 있는 법문인 상당법문의 첫 구절이다. 첫 구절부터 시대상의 문제를 반영해 법문을 펼치는 임제선의 법맥이 활발하게 드러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임제선의 법맥이기 때문에 현재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진다.


임제록은 모두 서문(序文)과 상당(上堂), 시중(示衆) 감변(勘辯), 행록(行錄), 탑기(塔記) 등 여섯 부문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상당이 임제록의 핵심으로 불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리 한국 사회의 시대 문제 해결과 밀접하다고 느낀 법문은 시중(示衆)의 법문들이다. 시중 법문에 살불살조(殺佛殺祖)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두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현재 시급한 우리 마음의 문제와 사회 문제를 해결할 힌트가 될 만한 법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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