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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10. 2024

안녕, 예수

나는 양생의 비법을 터득하여, 예수란 동생이 태어나고 사라진 뒤로도 2천 년 이상 살았다. 요샌 그 동생 생일이 세계 역년의 기준이란다. 강국의 역년을 따르는 것은 예로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었으니까, 그 동생에 대한 신앙이 강한 현재 최강대국들이 즐비한 서양의 역년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한다. 세상의 강국이란 늘 고정됨 없이 변하는 법. 그것이 내가 2천 년 이상 살아오면서 느낀 결과다. 뭐, 아무렴 어떠랴.


사실 나는 그 예수란 친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오래 살다보니, 심심해서 주역을 좀 배웠는데, 어느 날 우주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성인이 태어날 기미가 보였다. 그래서 같이 양생의 비법을 터득한 노형(요샌 도덕경을 쓴 노자라 부른다던데)하고 베들레헴에 갔다. 가던 중에 ‘차라투스트라’라는 이상한 중동 친구를 만났는데, 얘기해 보니 그 친구도 양생의 비밀(연금술이라는 학문을 하던 중에 불로장생의 묘약을 발견했다던가 뭐래나)을 터득하여 나이가 3백 살이 넘은 뒤로는 세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별자리(점성술이라는 학문이란다)도 볼 줄 알아 그도 성인을 보러 간다 했다. 그래서 우리 셋이 예수 동생을 보러 갔다. 간 김에 예수의 친지들에게 인사도 하고 선물도 주고 예수에게는 축복도 해주고 했다.


지금은 우리를 동방박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던데, 사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성인의 탄생을 축하하러 간 의미였지, 무슨 있지도 않은 메시아를 영접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알려진 사실은 옳지 않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어쨌든 지금 21세기에 예수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서양 중심의 역사와 그들의 소의경전(성경이라 부른다 한다)에서는 우리에 대한 기록이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 뒤로, 우리는 예수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워낙 뛰어난 친구였으니, 진리에 대해선 딱히 가르칠 것은 없었지만 나와 노형은 그러한 진리를 표현하는 웅변술이라든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양생의 비법 같은 자잘한 것들을 가르쳤다. 내가 웅변술과 양생법을 얘기하면서 육체를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예를 많이 들었더니, 예수는 그게 마음에 들었나보다. 그래서 자신은 커서 목수로 일하며 道를 가다듬겠다고 했다. 나는 기뻤다.


차라투스트라는 예수에게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을 가르쳤다. 나와 노형은 그러한 개념이 우스워서 차라투스트라에게 천국과 지옥이 우리가 사는 자연을 떠나 존재하는 어떤 시간, 공간적으로 고립된 무엇이라면, 그것은 바른 이해가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차라투스트라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이 개념은 마음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천국과 지옥의 개념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죽은 뒤에 존재하는 어떤 독립된 세계에 대한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러한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의식수준에 맞춘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런 오해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중동이나, 동양과 달리 가난하다. 현세에서의 구원을 말한다면, 지금의 가난이 지긋지긋한 그들은 애초에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은 뒤에 더 훌륭한 곳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일단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적인 믿음으로 그들의 꾀어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우리 친구 예수가 활동할 곳은 바로 이러한 가난한 서양이다.”


나와 노형은 걱정스러웠다. 차라투스트라는 분명히 道를 알고 있는 사람이며, 현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리를 대중의 눈높이로 낮추는 그의 방식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었다. 일단 꾀어내어진 사람들이 그 이분법을 포기할까? 그들은 결국 진리를 놓치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예수가 활동할 곳은 이곳 서양이니까, 차라투스트라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예수는 성장했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차라투스트라의 기본 개념을 사용해서 선교를 했고 나와 노형이 가르쳐준 양생의 비법으로 죽은 뒤에도 부활하여 선교를 했다. 지금은 세상의 흐름이 바뀌어서 서양이 더 풍족하고 동양이 서양에 비해 가난하다. 그래서 요즘 서양에서 명상이나, 나와 노형의 사상이나, 석가모니 선배의 사상이 유행하는가보다. 동양에서 예수 동생의 사상이 유행하듯이. 예수 동생이 부활해서 설교를 한 이후로는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번호는 고사하고 편지 쓰게 주소라도 알려주지, 매정한 친구. 뭐 아무렴 어떠랴. 피곤하다. 불필요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이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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