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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작가 Sep 11. 2024

지구를 지켜라!

노형의 소개로 자기가 안드로메다로부터 온 외계인이라 말하는 놈과 술자리를 가졌다. 당시, 놈은 폭음했다. 술안주를 토하는 대신 놈은 자신의 속마음을 스스로도 모르게 행간없이 게워내기 시작했다.


본인은 눈에선 금강석도 녹일만한 강력한 에너지 파장을 뿜어내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다고 놈이 주절대며 운을 떼더니 조만간 옹골찬 논리로 빛나는 과학문명을 이룩한 그의 고향별 우주인들이 지구를 정복할 예정이거니와 자신은 동족들이 이곳을 정복할 은밀하고 치밀한 계획을 위한 척후병으로 지금 여기에 와 있노라고 낮은 목소리로 이어서 속삭이고는 곧이은 내 벙찐 표정을 살피며 지구를 정복한 뒤엔 나와 노형을 죽이지 않고 자신이 타고 다니는 네발짐승의 견마잡이로 삼는 아량을 베풀겠으니 걱정말라 덧붙였다.


나는 믿었다. 지구별 위를 걸으며 수천 년을 살아온 나 장주나 노형과 같은 사람도 있으니, 지구를 적대하는 외계놈들이 존재하지 말란 법이 있던가? 나는 노형의 안색을 살폈다. 노형은 웃고 있었다.


후로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실내포장마차에서 닭발을 뜯으며 소주를 마셨다. 나는 지금 이놈을 여기서 죽여야지 않겠느냐고 노형에게 전음(傳音)을 날렸다. 노형이 묵묵히 포장마차 주인장을 호기해 리모컨을 달라했고, 그가 리모컨을 건네주었다.


자신만만하게, 허나 동시에 다소간 겸양의 낯빛도 보이며 노형이 리모컨으로 포장마차 한켠에 우뚝 내걸린 tv 전원을 켰다. 마침 뉴스 아나운서가 지구별의 흔한 일들을 보도하고 있었다.


“기내 서비스로 나온 땅콩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여객기를 리턴시킨.......”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연예인 장모 씨에 대한 성접대 의혹을 받는 정재계 인사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어.......

“이 씨는 재산 상속 문제로 아버지를 공기총으로 쏘아 죽인 혐의로 기소되어.......”

“종교적 보복을 주장하며 콥트교인들을 무참히 참수한 무장단체 IS는 이번에 또다시.......”


뉴스를 보던 외계인이 벌벌 떨었다. 그는 다음날 자기 고향별로 말없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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