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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 Sep 10. 2024

희망은 끝내 낙화로 흩날렸다

양생으로 산 처음 천년 동안은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다. 세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에겐 내 작은 배움을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당시의 나에겐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비전 따위야 본래 없었지만, 여전히 세상에 대한 희망은 있었다.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침탈,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진화로부터 비롯된 약육강식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이러한 모든 사태와 이러한 사태에 휩쓸리기도 하고 동화하기도 하고 사태를 조장하기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 도(道)를 알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道가 바로 사랑이란 것을 알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허나 천년세월 분주했던 나의 희망은 끝내 시들어 낙화 흩날렸다. 이후로 나는 푸르른 산맥과 울창한 숲, 그리고 삼면을 바다로 두른 먹을 게 풍족하고 인심 좋은 사람들의 고을에 자리 잡았다. 지금은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쓰는. 그렇게 한국에 정착해서 소주를 마시며, 삶을 이어갔다.


한국의 전쟁과 분단, 그리고 다시 분단국가 내에서의 지역 간의 분단, 세대 간의 분단, 경제적 계층 간의 분단, 또 분단. 분단. 이러한 갈등은 비단 이곳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회적 갈등은 그 기반을 개개인의 심리적 분열과 상처에 두고 있으니.


그래서 나는 오늘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고 꽃에 물을 주고 옆집 이웃에게 친절히 인사하고 드라마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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