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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작가 Sep 17. 2024

장주도 하나의 신분이었을 뿐

양생의 비법을 터득하였더라도 먹어야 하고 자야 한다. 그래서 일을 해야 한다. 양생의 비법을 터득하면 귀찮은 게, 늘 한결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늙지 않는 모습은 보통사람들을 소름끼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동시에 나 자신의 인생에서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15년 주기로 신분을 세탁하고 직장을 바꾼다. 전국시대 장주라는 이름도 그 이전부터 살아온 내게는 하나의 신분에 불과했다. 전국시대는 호시절이었다. SNS가 발달하지 않아 수십 년간 같은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이번 주기에 하는 일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다. 프로그래밍은 재밌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길러준다. 무한한 道에 비하면, 그것은 간단한 일이다. 정해진 루트로 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 노형에게 편지가 왔다. 일자리를 소개해준다는 아주 중요한 편지였다. 사실 한 달 전에 왔어야 하는 편지였는데, 이 형이 주소를 잘못 쓰는 바람에 편지가 옆집에 갔었고, 옆집 이웃이 깜빡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나에게 편지를 전달해줬다. 편지내용을 보니, 소개해주는 직장주소하고 전화번호만 적혀있다. 아, 이 형 스마트폰 쓰는 법 좀 익히라니까. 카톡으로 하면 빠르고 편할 것을.


스마트폰에 대해선 좀 할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기술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노형에게 스마트폰 사용하라니까, 얼큰하게 취한 노형이 농을 건다.


“너 세상에 때 탔다. 부끄러워서 기계는 안 쓴다고 떼쓰던 전국시대의 장주는 어디 갔냐?“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 요즘 스마트폰은 유치원생들도 쓸 줄 압니다. 다 큰 어른이 못 쓰는 게 말이 됩니까. 저는 이제 부끄러워 기계를 사용합니다.”


그리곤 노형과 한바탕 웃었다.


사람들은 내가 기계에 대해 말한 것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기계는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대 맞춰 유용한 기계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전국시대에 살던 나 장주라고 물질을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그때 나도 옷을 입고, 바느질하고, 강은 배타고 건너고, 우물에서 물 떠먹을 때 두레박으로 떠먹었다. 내가 말한 것은 물질에 소유되지 말라는 의미였다. 예를 들자면...


나와 노형은 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화제 삼으며 재밌게 농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 옆 테이블의 청년 세 명은 서로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애궂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앱을 눌러대며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보기에, 술자리 자체가 지겨운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그런 사람들은 집에 가도 지겨워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그 순간도 그들은 지겨워한다.


그들은 물질에 소유당해서, 무엇을 하든 집중하지 못한다. 온전히 한곳에, 또는 한 사람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말한 ‘부끄러워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의미이다. 기계는 써라. 그것은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소유당하지 말라.


말이 좀 길어졌다. 어쨌든, 소개해준 곳에 요행히 아직 자리가 있단다. 다음주에 면접보기로 했다. 잘 되겠지. 안 되면 어떠랴. 이만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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