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천국 싱가포르
처음 싱가포르에 도착해 아이 반 학부모 단체톡방에 초대되었을 때, 나는 이런 식으로 첫인사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OO의 부모입니다. 한국-프랑스 국제커플이고 한국에서 쭉 살다가 이곳에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꽤나 촌스러운 TMI 인사다. 나중에 보니 다른 학부모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or 이 그룹에 초대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OO의 부모입니다.". 아니면 그냥 인사를 생략하거나.
다문화 가정이 너무나 흔한 이곳에서 '국제커플'이란 워딩은 촌스럽게 느껴진다. 아이들 학교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CCK가 모여 있다. 아이들의 부모가 CCK로 자란 경우도 많다. 이런 환경에서는 국적의 의미가 흐릿해진다. 일단 한 마디로 대답하기가 복잡하고, 국적이 한 개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내 딸의 친한 친구 중 하나는, 자기 출신에 대한 질문에 이런 답변을 늘어놓아야 할 것이다.
'아빠는 방콕에서 태어난 중국계 태국인이고, 엄마는 두바이에서 태어났어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싱가포르에서 자라고 있어요.'
대한민국의 단일민족 신화를 교육받고 자란 나는 국제결혼을 한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국제 도시의 기본값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상상력을 길러야 했다.
한국에 살 때 우리 집 아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동서양의 특징이 섞인, 눈에 잘 띄는 용모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힐끗 보는 정도였고, 때로는 친절하고 기분 좋은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문제는 무례한 응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오랜 시간을 들여 빤히 쳐다보았는데, 그런 무표정한 응시는 아이를 공포에 질리게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신경질이 났다. 차라리 말을 걸어주기를, 아니면 옅은 미소라도 지어주기를 바랐다. 남들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살라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적나라하고 반복되는 관찰에 자주 노출될 때, 그 시선의 대상이 아이들일 때는 더더욱.
싱가포르로 이주 후, 아이들은 그런 시선에서 벗어났다.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 종교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마침내 평범해진 것이다. 다양한 피부색,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 입체적이거나 편평한 얼굴, 동그랗거나 길쭉한 체형, 인도 전통의상과 탱크톱 사이, 아이들은 그저 군중 속 익명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하게 각기 다른 사람들 속에서, 무관심에 둘러싸인 채, 우리의 외출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 자유는 백인 남성인 남편에게도 대단한 변화로 다가왔다. 우리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자유로워질 것이라고는.
싱가포르 생활 3년 차에 접어드는 지금,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이 나라가 품은 문화적 다양성 때문이다. 이 다양성 안에서 아이들이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다는 말이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지겹다는 사람도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말에 동의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때로 자유롭게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