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레사 Mar 07. 2024

남겨진 아이

거듭되는 이별

『친구와 헤어져도』(원제:La vida sin Santi), 안드레아 마투라나(지은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올레아(그림), 김영주(옮긴이), 책속물고기(출판사)

  한국을 떠나기 전, 아들의 친구들에게 줄 작별 선물로 고른 책은 『친구와 헤어져도』라는 그림책이었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마이아의 단짝 친구 산티가 다른 나라로 떠난다. 마이아는 산티의 빈자리로 인해 한동안 허전함을 느끼며 힘들어하지만 곧 주변의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상실을 극복한다. 산티 없는 삶에 익숙해졌을 즈음, 마이아는 산티가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이아는 산티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색하면 어떡하나 걱정한다. 하지만, 막상 산티와 재회한 마이아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난다. 친구와 헤어져도, 친구와 나눈 우정은 가슴 어딘가에 여전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을 선물로 고르게 된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이 떠나는 아이가 아닌 남겨진 아이이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친구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읽는다면 더 공감하기 좋을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 책의 주인공이 내 아이이기도 하다는 것을. 내 아이가 얼마나 자주 '남겨진 아이'가 될는지도.


  나는 아이들이 떠나는 자로서의 이별을 무사히 넘기고 나면, 더 이상의 큰 관계의 단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아이들 앞에는 이별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싱가포르는 직장문제로 잠시 머물다 가는 외국인이 많은 나라다. 그렇다 보니 국제 학교에는 드나드는 학생이 많다. 부모님을 따라 새로 오는 전학생도,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전학생도 많은 것이다. 만남과 이별을 거듭해서 경험하게 되는 이런 환경은 머무는 아이를 자꾸만 남겨진 아이로 만든다. 어느 책 속에서 이들에 대한 좋은 비유를 발견해 번역해서 옮겨 본다.

그들은 시냇물 속 바위와 같다. 자기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시냇물이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 시냇물이 사랑하는 것들을 끌고 가 버린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시냇물 속 바위.*

자기 자신은 한 곳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자꾸 교체되는 환경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동성을 끊임없이 경험한다. 여러 사람의 이동성에 동시 다발적으로 노출되면서 잦은 상실과 상실에 따르는 슬픔을 겪는다.


  이 슬픔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상실을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 어린이들은 상실을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고, 눈치챈다 하더라도 상실이 가져오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방법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게 되는 상실의 슬픔은 제대로 직시하고 겪어내지 않으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우리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게 만든다. 지름길은 없다. 그리하여, 아이가 겪고 있는 상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위로는 '너는 강한 아이니까, 다 이겨낼 수 있어!'와 같은 격려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무언갈 바꾸거나 고쳐 주려기 보다는 곁에 있어 주는 것으로, 내가 네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마이아처럼, 아이는 빈자리를 채우는 법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그림책 속 마이아는 산티와의 재회를 앞두고 반가움과 어색함의 양가감정을 느낀다. 현실적이고 솔직한 장면이다. 각자 다른 세계를 만들며 살아가는 두 친구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만큼 심적 거리도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아는 다시 볼 용기를 낸다. 아마 산티도 같은 용기를 냈을 것이다. 이들을 보며 깨닫는다. 인연이란 용기 없이는 계속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자꾸만 용기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원문: "They are like a rock in the stream, thinking mobility isn’t their story but forgetting the stream is moving on, carrying those they love away and they can’t go with it." from『Third Culture Kids: The Experience of Growing Up Among Worlds』, by David C. Pollock, Ruth E. Van Reken, Michael V. Pollock, Nicholas Brealey Publishing

이전 04화 떠나는 아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