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사
싱가포르행이 결정된 뒤, 코로나 때문에 일 년 반 가까운 시간을 붕 뜬 상태로 지냈다. 지금에야 '일 년 반 가까운 시간'이었다고 깔끔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에 참으로 갑갑했다. 남편 말론 회사에서 발령을 내주기로 결정은 났다고 하는데 이주에 관련된 절차는 진행이 더뎠다. 급기야 남편은 싱가포르 팀 일을 한국에서 시작했다. 전염병이 여러 사람 발목 잡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자주 "언제 가는 거야?"라고 물었는데 그걸 제일 알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그 질문이 "가긴 가는 거야?"로 바뀌었을 때즈음엔 싱가포르행을 떠벌리고 다닌 게 후회스러웠다. 비행기표나 끊고 얘기할걸.
그렇게 오랜 시간 뜸을 들이다 떠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날이 잡히고 나니 여러 가지 일로 분주했다. 비자 관련 서류를 준비하면서 집주인에게 집 빼는 날을 통보하고, 각종 약정, 계약, 자동이체의 멍에를 하나씩 벗어냈다. 버릴 짐과 가져갈 짐을 나누는 동시에 아직 사용하지 못한 포인트와 회원권을 탈탈 터느라 새로운 무언가를 사들였다. 이삿짐센터 견적을 내고,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잠시 지낼 임시거처를 결정해야 했을 뿐 아니라, 시시각각 바뀌는 코로나 방역 지침을 확인하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했다. 작별인사한다고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러 다녔다면 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겠지만, 혹시나 코로나에 걸려 비행기를 못 탈까 봐 몸을 사렸다.
그러는 와중에 가장 신경을 쓴 건 아무래도 두 아이들이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향해 가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설레면서도 두려운 변화였지만, 적어도 어른들에게는 예상 가능한 범위가 더 넓었고 무엇보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아이들은 아니었다. 물론 이주 결정을 내리기 전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기는 했으나 그것은 선택권을 주기 위함이었다기보다는 교묘한 설득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답정너'였던 것이다.
떠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4세, 6세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듯 설레하기도 하다가, 정든 동네와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잠깐씩 슬퍼했다. 오늘이 제일 중요하고,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충실한 아이들은 미래의 일을 현실감 있게 예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예상의 재료들이 아직 부족할 때이기도 하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찾게되는 것은 책이다. 이사와 이별에 관한 그림책과 함께 싱가포르에 대한 학습만화책을 사서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꾸 손이 가도록 유도했다. 아이들 앞에 세계 지도를 펴놓고 싱가포르 위치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와 다니게 될 학교 사진을 인터넷으로 함께 찾아보기도 했다. 모두 멋져 보였다. 더 좋은 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 우리는 그 기분 좋은 예감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현재를 제대로 매듭 짓는 일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송별회는 따로 못해주더라도, 기억에 남을만한 의식은 치를 필요가 있었다.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친구들에게 그림책과 함께 작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사를 앞두고 사들였던, 이별을 주제로 한 그림책 중에 선물하기에 적당한 책 한 권을 골랐다. 책 포장은 갈색 서류봉투로 준비했다. 아이는 봉투 위에 친구의 이름과 작별인사를 쓴 뒤, 각 친구에게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접기 한 것을 붙였다. 한 친구, 한 친구에게 잠깐씩 집중하는 시간을 며칠에 걸쳐 가지면서 아이는 이별의 과정에 몸으로 참여했다. 설령 나중에 다 잊게 될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이 마음과 정성은 분명 아이의 정서로 남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서류 봉투를 봉했다.